[뉴욕타임스]되돌아본 뉴욕100년/1930년대

  • 입력 2000년 3월 9일 19시 47분


1928년 나는 앨 스미스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 때 나는 여섯 살이었고, 스미스의 사진은 온 동네에 붙어 있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은 다른 후보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스미스는 패했고 나는 상처를 입었다.

한편 같은 시기에 뉴저지에서는 미래의 내 시아버지가 독일에서 이민을 온 그의 처가 사람들에게 야망을 더 가져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이제 미국인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미스가 선거에서 패한 직후에 그는 화학자라는 직업을 그만두었다.

▼공황으로 이민자들 거리로▼

그런데 그 직후에 1929년의 대공황이 닥쳤다. 시아버지는 결국 집을 잃고 가족들과 함께 처남의 집에서 12년간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의 지하실에서 개발한 세척제가 큰 인기를 끈 덕분에 마침내 자랑스럽게 새 집을 살 수 있었다.

당시 뉴욕은 세입자들의 도시였다. 대부분 유대인이며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 셋집을 잃는다는 것은 자기 집을 잃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내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 친구 집의 가구들이 거리에 나와 있는 광경이었다.

식구들이 아까워서 한 번도 써보지 못했던 그릇들과 정든 소파 등이 도둑과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스미스를 누르고 대통령이 됐던 후버가 다음 선거에서 패할 때까지 예닐곱 번씩 이사를 다녔다. 만약 1929년의 대공황이 그렇게 급작스럽지 않았다면, 뉴욕에는 더 많은 임대아파트들이 들어섰을 것이다.

1930년대 중반의 어느 날, 어머니는 내게 접는 의자를 들고 거리에 나가서 앉아 있으라고 했다. 약 두 시간이 지난 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좋은 자리를 미리 확보해두고 싶었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어, 폴란드어, 영어로 만세를 외쳐대는 가운데 루스벨트 대통령은 손을 흔들며 거리를 지나갔다. 겨우 1분 남짓한 순간의 일이었다.

▼"루스벨트는 우리의 희망"▼

사람들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미국을 사회주의로 평화롭게 이끌어갈 것이라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오히려 더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그 와중에 히틀러가 등장했고, 스페인 내전이 시작됐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37년에 스페인으로 가서 내전에 참전했다.

독일과 러시아는 스페인을 무대로 온갖 전쟁도구의 실험을 실시한 반면, 미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스페인 정부를 버리기로 한 것 같았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도 많은 시위가 벌어졌다. 우리는 스페인을 위해서 울었으며 시를 썼다. 그러나 놀랍게도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하자 다정하고 정열적인 이탈리아인 친구들이 갑자기 자부심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필자:그래이스 팔리(작가)

(http://www.nyt.com/specials/nyc100/nyc100-4-pale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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