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명성황후의 '노래'

  • 입력 2000년 3월 8일 19시 14분


“백성들아, 일어나라 일어나라.…한 발 나아가면 빛나는 자주와 독립, 한 발 물러서면 예속과 핍박. 용기와 지혜로 힘 모아 망국의 수치 목숨 걸고 맞서야 하리.” 뮤지컬 ‘명성황후’ 맺음막의 아리아 ‘백성이여 일어나라’의 한 구절이다. 일본인 낭인(浪人)들에게 시해된 명성황후 민비가 혼백으로 나타나 노래한다. 무대 뒤편에서 한 발 한 발 걸어나오는 ‘뮤지컬여왕’ 이태원(34)의 이 마지막 노래는 그 비장함과 솟구치는 힘으로 무대 전체를 압도하며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을미사변이 있고 3년이 지난 1898년, 며느리 민비와 끝내 등져야 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興宣 大院君 李昰應)은 경기 양주 곧은골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48년 우남 이승만(雩南 李承晩)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일제 식민지배에서 광복한지 3년이 지나서였다. 그 후 다시 반세기가 지난 1998년 후광 김대중(後廣 金大中)은 헌정사상 최초로 평화적 선거에 의한 여야(與野)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리고 이제 3년째를 맞고 있다.

▷100년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갔다. 해일처럼 밀려오던 외세 앞에서 명성황후의 ‘절규’도, 흥선대원군의 ‘쇄국의 빗장’도 맥없이 무너져 내렸고 우남 이승만의 건국 또한 분단의 반쪽을 넘지 못한 채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외세의 힘도 여전하다. 근대화를 넘어 민주화와 세계화의 새 천년을 맞고 있다지만 ‘명성황후의 노래’가 아직 생생하게 들리지 않는가.

▷총선을 앞두고 좁은 나라가 다시 지역감정으로 찢겨질 조짐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시대적 소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나라를 찢어놓는 지역감정으로 ‘백성’들이 그동안 무슨 득을 얼마나 보았는지 새겨볼 일이다. 유권자들이여 일어나라, 일어나라. 한 발 나아가면 하나되는 선진국민, 한발 물러서면 나라 망치는 지역감정의 노예.

<전진우논설위원>

youngji@donga.com

<전진우기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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