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말'과 지역감정

  • 입력 2000년 3월 3일 19시 17분


우리는 그동안 총선을 앞두고 다시 고개를 드는 듯한 지역주의 움직임에 대해 여러 차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정치권의 행태에 대해서는 엄중한 비판과 함께 자제를 당부해왔다. 우리가 가칭 민주국민당의 창당에 유감을 나타낸 이유 중 하나도 민국당 창당이 이번 총선에서 고질적인 지역대결 구도를 보다 심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 신당 관계자들은 전임 대통령을 줄줄이 방문하는 등 영남 민심 끌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맹목적인 지역감정과 배타적인 지역주의는 마땅히 청산되어야 한다. 수십년에 걸친 지역주의의 폐해를 겪어오면서 이제 많은 국민은 지역주의의 청산 없이는 한 단계 높은 사회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참정권 운동과 요즘 젊은 세대의 새로운 의식도 지역주의 청산에 밝은 전망을 갖게 한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여전히 특정지역에 기반한 정당 구조는 여야 가릴 것 없이 걸핏하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지역주의에 매달리게 한다. 당장 표가 필요한 선거때가 되면 이러한 행태는 더욱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부추겨진 지역감정이 집단화하면 시민의식도 개인의 이성도 실종된다. 그리고 한 지역의 집단화된 지역감정은 곧 다른 지역으로 확대재생산된다. 그 결과는 말 그대로 ‘망국적(亡國的)’이다.

지역감정이 언제부터 누구 때문에 생겼느냐에 대한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JP)자민련명예총재의 ‘발언’은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그 시점이나 사안의 성격에 비추어 적절치 못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지역감정의 연원은 한두 마디로 밝힐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복합적인 원인이 장기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이런 문제를 나라와 정파의 지도자라 할 두 사람이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 단순히 ‘어느 때부터’ ‘누구때문에’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걸맞지 않다.

더구나 DJ는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이자 ‘수혜자’이기도 하다. JP 역시 지역감정에 편승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밖의 지도급 정치인사들 중 누구도 지역주의문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말들을 삼가야 한다. 공연한 빌미를 주는 일도, 그에 대한 감정적인 즉각대응도 자제해야 한다. 총선을 겨냥해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일은 더욱 안된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이 이제는 과거처럼 그들의 속셈대로 놀아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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