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전광우/'환란의 교훈' 벌써 잊었나

  • 입력 2000년 2월 27일 19시 21분


▼ 위험관리 원칙은 균형-안정 ▼

인간은 역사를 쓰기는 하지만 역사로부터 배우지는 않는다. 이 말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약 200년 전에 한 얘기이지만 2년 전 경제위기의 쓰라린 경험이 일천한 우리 국민이 모두 되새겨봐야 할 경고의 메시지인 듯싶다. 국가부도의 위기로부터 780억달러가 넘는 사상최대의 외환보유액을 쌓고 작년도 실질경제성장률이 인플레의 10배를 넘는 경이적인 회복을 이룩한 것은 다같이 기뻐할 일임에 분명하지만 지금은 단기적 성과에 도취될 때가 아니다.

올들어 사치성 수입이 급속히 늘면서 무역수지가 27개월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여행수지도 적자로 반전되고 있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에서 환란 직후 금 모금 캠페인을 벌이던 시민들의 결연한 모습은 찾기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환위기의 배경에는 적절한 위험관리 체제가 부재했다는 뼈저린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환란의 폭풍이 지나면서 사이버 혁명의 열풍을 맞고 있는 현재의 여건에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디지털경제가 21세기 세계경제의 큰 흐름이며 향후 한국경제의 경쟁력은 디지털환경의 빠른 적응에 달려 있다는 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의 혁신과 인터넷의 확산으로 사회 대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신경제의 궁극적인 영향에 대한 단적인 판단이 어려운 형편이다. 이를테면 신경제의 긍정적인 기대효과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위험관리의 필요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며 위험관리의 기본원칙은 균형과 안정이다.

대외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고유가 저엔화에 따른 교역조건의 악화와 함께 자본시장 개방화의 확대로 단기투기성 자금의 유출입이 어느 때보다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세계주식시장의 동조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국내주가 변동폭이 크게 늘어나 시장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대응하는 합리적인 리스크 관리의 기본틀은 무엇인가

우선 신경제와 구경제의 균형성장이 바람직하다. 디지털혁명이 전통적인 산업의 파괴를 초래해서는 안되며 신산업과 구산업의 유기적 접목을 통해 시너지 효과와 생산성 제고를 지향해야 한다. 신경제 덕분에 미국경제가 지난 10년간 고성장 저물가 저실업의 호황을 지속하고 있다고는 하나 미국을 그대로 벤치마킹하기에는 우리의 입장은 좀 다르다.

아직도 1300억달러가 넘는 외채를 안고 있는 한국경제는 당분간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수출의 90% 정도가 전통적인 산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고 인터넷 관련 산업은 대부분 서비스 분야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서비스산업이 국민총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기록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버텨내고 있는 미국의 자급경제와는 구조적 차이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최근 코스닥 열기와 거래소 냉각에서 배울 수 있듯이 국민정서의 극단성을 지양하고 좀더 조화있는 감각과 정책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 외환보유고 안정적 확충을 ▼

아울러 균형재정의 조속한 회복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며 효율적인 금융시스템과 시장인프라 구축에 배전의 노력을 기해야 한다. 정보의 디지털화는 금융거래의 속도를 엄청나게 높여 시장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 인터넷 금융의 확산은 특히 자본시장거래 패턴에 영향을 주면서 단기화 투기화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때문에 현재 추진 중인 구조조정의 완결을 통해 국내시장의 체질을 강화하고 재정 건전성을 높여 외풍을 감내할 체력을 길러야 할 때다.

끝으로 국가간 자본이동의 규모와 속도가 늘어나고 있고 외환자유화 확대가 예정된 현 여건에서 국제금융 동향과 자금이동에 대한 효율적인 모니터링 기능을 제고해야 한다. 근 1000억달러로 추정되는 핫머니의 유출입과 550억달러에 달하는 단기성 외채상환 부담을 감안할 때 외환보유액의 안정적 확충과 더불어 환율과 국제수지의 신중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광우 <세계은행 수석연구위원·재경부장관 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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