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습부진아 20만명

  • 입력 2000년 2월 21일 19시 42분


코멘트
명색이 고등학생인데도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덧셈 뺄셈과 곱하기 나누기 같은 기본적인 계산을 못하는 아이가 있다는 것은 얼른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실제로 이처럼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중학생의 경우 4만5000명, 고등학생은 1만8000명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조사를 맡은 충남대 주삼환 교수팀에 따르면 이들 기초학력 부진아와 이들보다 수준은 좀 낫지만 그래도 정상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습부진아를 모두 합치게 되면 전국 초중고교에서 2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전체 초중고교생 800여만명 가운데 2.5%를 차지할 만큼 적지 않은 수인데다 최근 크게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는 점에서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지능지수가 현저히 떨어지는 지체아는 아니다. 머리는 정상이지만 집중력이 부족하다든지 정서불안, 학부모의 관심소홀 등 다른 원인으로 공부에 자꾸 뒤지고 이것이 누적되어 공부를 포기하다시피 한 아이들이다. 윗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입시교육에 무게가 실리면서 학교측은 명문대 진학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에게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다. 대입경쟁에서 일찍 탈락해 버린 이들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학교측의 관심권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들의 존재는 현행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우리 교육은 한 학급에 많은 학생을 몰아넣고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을 해 왔다. 산업사회 시대에나 맞을 법한 인재의 ‘대량생산’에 초점을 둔 방식이다. 힘에 부쳐 못 따라오는 학생들은 사실상 방치됐다. 20만명에 달하는 학습부진아들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이런 후진적 교육체제에 놓여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지식정보사회에 들어선 시점에서 이젠 학생 개개인의 ‘눈높이’에 초점을 맞추는 교육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학습부진아도 문제이지만 초중고교생의 전체적인 학력이 저하되고 있는 점도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해가 다르게 신입생들의 학력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학습부진아가 양산되고 엘리트교육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인적 자산에 국가의 미래를 걸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낙담스러울 따름이다. 이 문제의 확실한 해법은 장기적으로 학급당 학생수를 크게 줄여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이미 발생한 학습부진아에 대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해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