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시장 가는길]'대박 꿈' 부풀다 '깡통'차기 십상

  • 입력 2000년 2월 20일 20시 02분


4월초 어느날밤 몇몇 전주(錢主)들이 서울 명동의 한 사무실에 모인다. “A와B는 C증권사 구좌를 통해 오전 10시에 모인터넷 기업 주식을 주당 5000원에 5000주씩 매수매도준문을 낸다. D와E는 F증권사 객장에서 오후에 주당 7000원에 5000주 매수매도 주문을 낸다. 이런 식으로 주가를 5만원까지 끌어올린뒤 팔고 나간다”

다음달 중순 개장될 예정인 제3시장에서는 이같은 작전시나리오가 난무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매수매도 주문가격이 일치할때만 거래가 형성되는 상대매매 방식이 채택돼 증시의 작전세력들이 주가를 쉽게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이에 대한 제재규정조차 마련돼있지 않아 ‘대박’의 꿈에 부풀어 멋모르고 투자한 개인들만 피해를 볼 우려가 높다.

▽작전세력의 천국〓제3시장에서 거래될 종목들은 대부분 자본금규모가 작아 주식을 누가 얼마나 갖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작전세력이 대상종목을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주주구성현황으로 대주주 지분율이 높아 유통물량이 적은 기업을 선호한다. 기업의 사업내용이 아주 어려워 일반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 따라서 정보통신 인터넷 생명공학 관련 벤처기업들이 자주 거론된다.

작전세력들은 먼저 대주주에게 접근해 일정기간 시장에 물량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받고 확보한 물량을 토대로 조금씩 가격을 올리며 서로 사고 판다. 주문도 한 증권사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증권사를 통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 코스닥시장에서도 유통물량이 적은 종목을 대상으로 작전세력들이 장마감 무렵 대량의 허수 상한가 주문을 내는 방식으로 주가를 많이 끌어올렸다”며 “제3시장은 감시체계가 거의 없어 작전하기가 훨씬 더 쉽다”고 말했다.

▽편법상속 증여 횡행〓A는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사채업자 B를 동원, 모기업 주식을 B에게 싸게 판다. 이후 A는 다시 B로부터 주식을 훨씬 비싼 값에 사들이고 B는 일정금액의 수수료를 받는다. 제3시장에서는 이처럼 편법적인 부의 상속이나 증여가 너무나 쉽게 게 이뤄질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 물론 지금까지 이같은 방식으로 음성적인 상속증여가 이뤄져왔으나 앞으로는 제3시장이라는 합법적 공간을 이용한다는 것.

▽대책은 없다〓감독당국에서는 제3시장을 거래소나 코스닥과 같은 시장이 아니라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된 기업과 비등록기업의 환금성을 높여주는 공간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코스닥증권시장을 통해 거래만 체결해줄 뿐이며 나머지는 투자자들이 철저히 자기책임하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입장. 증권업협회 관계자는 “작전가능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시세조정 등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증권전문가들은 제3시장에서 떼돈을 벌기보다는 투자원금을 모두 날릴 수 있다는 점에 더 유의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김두영기자>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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