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물갈이는 '도로아미타불'?

  • 입력 2000년 2월 16일 1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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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들의 4월총선 후보 공천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당초의 정치판을 신선하고 전문성 있는 인물로 바꾸겠다는 ‘물갈이 약속’이 공약(空約)으로 변질될 조짐이 보인다. 국민의 지탄을 받고 총선연대 등 시민단체의 공천 ‘부적격’ 명단에도 겹치기로 오른 비리 부패 무능 구악(舊惡) 정치인들조차 ‘지역정서와 당선가능성’을 이유로 다시 공천을 받으리라는 보도다.

민주당의 경우 김대중총재를 비롯한 당 간부들이 텃밭인 호남에서부터 ‘공천혁명’을 이루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시민단체의 ‘낙천 명단’도 적극 참고하겠다고 하더니 정작 호남지역도 바뀌는 사람은 몇 명 안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민주당은 ‘당(黨)에 대한 기여도’라는 애매한 조건을 공천기준에 추가해 놓고는 이를 빌미로 ‘낡고 썩은 인사’들에 대한 낙하산 공천을 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래서 묵은 시대의 낯익은 이름들이 줄줄이 재공천 받으리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서도 이부영 원내총무가 ‘당내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두꺼운 벽’을 지적하며 공천에서 ‘영남권과 개혁의 접목’이 어려워지는 점을 비판하는 등 옛날식 공천이 우려되고 있다. 자민련은 물갈이에 무관심하기조차 한 태도다.

이러한 사태는 처음부터 우려됐던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정당으로서는 교체되는 측의 죽기살기식 반발에다 그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새로 공천한 신인과 같은 지역에서 난전을 벌이면 결과적으로 의석 수만 날린다는 걱정 때문에 과감한 인적 교체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과감한 인적 쇄신과 새로운 정치 엘리트의 충원을 미루어온 결과 오늘날 정치무대의 퇴적물(堆積物)과 그 적폐는 민생을 위협하고 국가의 미래를 잠식할지도 모를 위기까지 불러왔다. 그래서 사상 처음으로 시민단체에 의해 인위적인 낙천낙선운동이 벌어지고 국민이 거기에 갈채를 보낸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이러한 여망과 현실을 도외시하고 다시 옛날식으로 주저앉으려 해선 안된다. 물론 다선(多選)의원이라면 모두 갈아치워야 할 악(惡)이요, 정치 신인이면 모두 선(善)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이 나라 정치의 치명적인 약점인 ‘지역정당의 틀’에 기생(寄生) 안주하면서 자질과 능력 비전과는 거리가 먼 인사들이 피선(被選)횟수를 쌓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과정에서 정치는 ‘개혁’이 아닌 ‘퇴행’의 길을 걸어온 측면이 많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른바 ‘텃밭’에서는 누구를 공천해도 당선될 것이라는 안이한 자세로 공천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역주의 정치’를 연장시키는 구태(舊態)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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