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동철/386세대가 제 몫 하려면

  • 입력 2000년 2월 10일 19시 53분


‘386세대’의 바람이 거세다. 16대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세를 얻어 가는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을 돌파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자’를 뜻하는 386세대를 택했기 때문이다.

변화와 개혁이라는 새천년의 명제 앞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기성정치권에 386세대는 매혹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87년 6월항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주역 중의 하나인 이 세대는 때묻지 않은 참신성이 그 생명력이다.

이들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민주당 공천의 5대 기준(개혁성,국회에서의 활동실적, 전문성, 당선가능성, 도덕성) 가운데 최소한 3개 이상은 충족시키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신년회견에서 천명한 ‘과감한 공천개혁’을 위한 필요조건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386세대는 이미 4년 전 15대 총선 때부터 정치권에 의해 발탁되기 시작,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민석(金民錫·국민회의)의원이 의정단상에 화려하게 등단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일찍부터 정치권의 유혹을 받은 탓인 지 386세대가 기성정치인 못지 않게 ‘가장 정치적인 집단’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비판은 현정권 출범 이후 청와대민정비서실 국장을 역임한 뒤 민주당 서울 강서갑 공천을 신청한 임삼진(林三鎭)전녹색교통운동 사무총장이 최근 발표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국민주권 회복을 위한 어느 민주주의자의 선택’이라는 글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자신을 386세대의 별칭인 ‘모래시계세대’라고 밝힌 그는 “핵심실세들의 비서들과 친해져 한가닥 정보라도 얻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젊은 피들의 모습은 안타깝기까지 했다”면서 “새벽마다 유력자들의 집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그 속에서 과연 한국의 미래가 있을까 의심이 들게 했다”고 한탄했다.

386세대 중 일부가 기성정치권의 두터운 장벽을 돌파하지 못한 채 함몰돼 가는 현실을 정치권 입문 한달 만에 느꼈다는 게 임씨의 고백인 셈이다.

이런 현상은 집단으로서의 386세대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386세대 구성원 중 일부의 잘못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에 입문했거나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리는 386세대의 행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정치의 구조적 문제인 1인보스정치, 밀실공천, 줄서기 관행 등에 굴복한 386세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치열한 영입경쟁을 이용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막후교섭을 벌이다 말 바꿔타기를 서슴지 않은 386세대도 여럿 있었다. 또 상대적으로 당선이 가능한 지역만을 노리며 지역구를 넘나든 386세대도 없지 않았다.

물론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이른바 ‘바꿔 증후군’의 중심에 386세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386세대는 결코 ‘기득권’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386세대의 정치적 자리매김은 기존 정치권과는 다른 위상을 그들 스스로 어떻게 정립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eastph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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