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배인준/'인터넷 難民'

  • 입력 2000년 2월 7일 19시 57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주 장관들에게 인터넷을 배우라고 E메일로 지시했다. 여러 장관이 넷맹(인터넷사용불능자)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공무원의 40%만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하며 국장급 이상의 상당수가 컴맹이라는 최근의 보고에도 김대통령은 상심한 것 같다. 인터넷 이용자가 1000만명을 넘었다는 정부발표와 어울리지 않는 현실이다. 1000만명이면 10세 이상 인구 4명 중 1명꼴인데 명색이 장관들이 거기에도 끼지 못한다니…. 현정부 첫해엔 마우스와 TV리모컨을 구별하지 못하는 장관도 있었다.

▼넷맹長官 과외라도…▼

대통령이 사이버백화점에 접속해 손자들에게 줄 설날 선물을 구입하는 등 솔선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심정이 이해된다. 하지만 대통령과 장관 대여섯명이 E메일을 한번 주고받는 시위 정도로는 대통령이 강조하는 ‘전자정부(電子政府)’가 쉽게 실현될 것 같지 않다. 인터넷에 대한 기술적 능력과 사회학적 이해(理解) 부족만이 걸림돌인 것은 아니다. 정부내의 크고 작은 조직간 정보파워게임, 밥그릇 빼앗기지 않으려고 행정정보화에 집요하게 저항하는 관료행태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공무원은 국민세금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디지털시대에 맞는 행정서비스 능력과 자세를 갖추지 못한 관리는 도태되거나 차별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물론 컴맹 넷맹 장관과 공무원들을 주눅들게 할 것까진 없다. 그보다는 이들이 오늘부터라도 ‘디지털사회의 시민권’을 따기 위한 행동에 나서도록 격려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47)가 컴맹임을 고백하고 인터넷에 도전장을 던진 것은 불과 4개월 전이다. 재경장관 무역산업장관 에너지장관 노동장관 내무장관 등을 거친 그는 워드프로세서조차 못다루는 자신이 부끄럽다면서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은 인터넷에 푹 빠져있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63)전일본총리가 컴맹탈출에 나선 것도 겨우 1년반 전 총리직에서 물러난 직후였다. 그는 통산장관이던 5년 전 미일(美日)자동차협상 때 일본 대표단이 전화통을 들고 악을 쓰는 동안 미국측은 모든 연락을 E메일로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과 가정에서도 넷맹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 적잖다. 특히 40대 이상 연령층의 직장인과 구직자, 그리고 네티즌 자녀를 둔 주부 등이 인터넷 때문에 기가 죽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인터넷을 등지고 사는 방법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살자면 경제적 기회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또 디지털사회의 소외자로, 정보의 약자(弱者)로 가정에서조차 대화의 아웃사이더로 고통받아야 한다.

국내 실업자는 아직도 100만명을 웃돈다. 일자리가 있더라도 디지털형 사고(思考)와 업무로 전환하지 못한 사람들은 상사나 선배로서의 권위를 반납한 건 물론이고 경쟁력 위기에 직면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인터넷산업은 올해 당장 8000명의 인력이 부족하고 2003년엔 9만명이 모자랄 것으로 정보통신부는 추정한다.

남궁석(南宮晳)정통부장관을 만났더니 “인터넷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도 3∼4개월이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며 부인 얘기를 해주었다. 작년 어느 날의 일이다. 남장관 부인(60)은 남편이 결혼을 앞둔 막내딸에 대해 자기보다 미주알고주알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음을 알았다. 그것이 남편과 딸 사이의 빈번한 E메일 대화 때문인 줄도 알게 됐다. 부인은 자구책을 찾아 나섰다. 대학부설 정보통신학원에서 1개월짜리 실무교육을 받았고 틈틈이 딸로부터 보충수업도 받았다. 지금은 미국에 가 있는 딸과 E메일을 자주 주고받고 남편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 재택(在宅)비서역도 한다는 얘기다.

▼'인터넷市民權' 늦진 않았다▼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은 76세이던 재작년에야 컴퓨터를 배웠다. 지금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혜화동 할아버지’로 꽤 유명하게 활약하고 있다.

아직은 디지털인간보다 아날로그인간이 많다. 마음 굳게 먹고 도전하면 인터넷클럽 멤버십을 손에 쥘 수 있다. 다만 시간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디지털빅뱅이 워낙 급속하기 때문이다. 낙오자는 디지털난민(難民)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소니사장은 인터넷의 성장과 아날로그 패러다임의 퇴조를 ‘운석(별똥별)에 의한 공룡의 멸종’에 비유한다.

<배인준 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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