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정치 중독증

  • 입력 2000년 1월 25일 20시 20분


국어대사전에는 중독이 두 가지로 풀이돼 있다. 하나는 ‘음식물 또는 약물의 독성에 치여서 기능장애를 일으키는 일’이고 또 하나는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버려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이다. 예전에는 중독하면 대체로 앞쪽이 먼저 떠올랐다. 식중독,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연탄가스중독 등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지칭되는 뒤쪽의 중독이 물결을 이룬다. 도박중독, 쇼핑중독, 메이커중독, 연애중독, 섹스중독, 게임중독 등 별의별 게 다 있다.

▷요즘 가장 기승을 부리는 중독은 주식중독과 사이버중독일 것이다. 일부 신경정신과 병원의 환자 중 30% 가량이 주식중독에 따른 우울증환자라는 얘기다. 퇴직금을 모두 건 모험성 투자자도 적지 않고 등록금을 주식에 투자하는 대학생도 있다는 것이니 사회적 중독 범위가 범상치 않은 것 같다. 사이버중독도 만연되고 있다. 인터넷과 컴퓨터게임 등에 탐닉함으로써 학교생활을 망치는 아이, 가상공간에서 혼자만의 세계를 추구하다 대화 기피증세를 보이는 사람 등의 증가는 이 사회를 메마르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독의 전성시대’에서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정치중독이 아닌가 싶다. 왜냐 하면 정치중독은 개인적 질환 차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어떤 중독보다 커다란 사회적 폐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악성(惡性)이다. 정치중독은 다양한 계층에 다양하게 나타나겠으나 권력의 단맛에 길들여지는 정치인의 중독이 문제이다. 일단 정치인이 중독되면 그는 정치에 입문할 당시의 각오를 까맣게 잊는 게 상례이다. 국민의 뜻과는 배치되는 일을 하면서도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한다. 권력에 중독된 정치인은 자기도취적이 되는 것이다.

▷총선시민연대가 엊그제 발표한 공천부적격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 정치인 일부의 해명을 보면 정치인의 중독은 정말 중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은 잘못이 없는데 왜 난리냐’는 식이다. ‘환자가 중독을 인정하지 않고 치료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치료가 어렵다’는 게 정신과 의사의 말이다.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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