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어쩌면 이리 다를까

  • 입력 2000년 1월 24일 19시 10분


20일 독일 기민당(CDU)의 재정책임자인 후엔렌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독일 언론은 후엔렌의 자살이 현재 독일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기민당 지도부의 비자금 스캔들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기민당 비자금 규모는 총 1000만마르크(약 60억원).

노동자 출신으로 프랑스 총리를 지냈던 베레고부아는 93년 하원의원 선거에서 참패, 총리자리를 우파에 넘겨준 뒤 한달 만에 권총자살을 했다. 그는 장관 시절 집을 살 때 모자라는 100만프랑(약 2억원)을 미테랑 전대통령의 친구로부터 무이자로 빌렸다는 이유로 언론으로부터 집중타를 맞았다. 수치심에다 자신의 일이 사회당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다는 책임의식 때문에 목숨을 끊었으리라는 게 많은 사람이 추정하는 자살 이유다.

2000년 1월 한국. 총선시민연대가 비리혐의 의원 등을 ‘공천부적격자’로 규정하고 나섰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사면을 받은 만큼 피선거권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에 부적격자로 지목된 인사 중 일부는 “선거를 통해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더욱 강하게 출마 의지를 다지고 있다.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인사들까지 “재수 없이 나만 걸린 것일 뿐”이라며 총선 전 사면을 외친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검찰수사를 통해 독일 기민당 비자금 규모의 수십배, 수백배에 이르는 정치권 비자금의 윤곽이 드러난 적이 있다. 그러나 여태껏 스스로 ‘수치’나 ‘자책’의 뜻을 입에 담은 정치인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깃털’이라거나 ‘편파사정’에 걸렸던 것이라고 항변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시민단체의 ‘퇴출 정치인’ 명단 발표 기자회견이 국민적 관심 속에 TV로 생중계되는, 지구상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희한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공종식기자>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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