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329)

  • 입력 2000년 1월 20일 19시 38분


이희수씨는 마틴과 함께 프랑크푸르트 부근으로 출장을 갔어요. 인근 소도시에 있는 작은 공동체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는 돌아가면 낙향해서 아름다운 열린 학교를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지요. 나는 그가 어릴적에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나까지 덩달아 그곳에 가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이야기했던 다리와 느티나무와 물웅덩이를 되풀이 이야기하곤 했죠. 그가 출장간지 일주일이 거의 다 되도록 전화 한 통 연락이 없어서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아침에 학교에 들렀다가 공대 연구소 쪽으로 전화를 걸어 봤지요. 물론 그는 돌아오지 않았더군요. 마틴을 찾았는데 한참이나 있다가 어떤 사람이 전화를 바꾸더니 내 주소를 묻는 거예요. 의아한 생각이 들면서도 무심코 주소를 불러주고 나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어요. 독일인 연구원이거나 조수일텐데 아마도 누군가가 나를 찾아올 거라고 하는 거예요. 고개만 갸웃 해보고 그저 그러려니 했어요. 이튿날도 아무 연락이 없어요. 오전 내내 집에 있다가 마리와 함께 내 방에서 오랜만에 잡채를 데워서 냉동식품으로 나온 중국식 춘권을 튀겨 맛있게 먹었죠. 물감이며 화구를 사러 시내 나갔다가 초오 플라스트에서 우리 영화 한편을 보았구요. 무슨 상을 받았다는데 말은 우리말이 나오고 자막은 독일어로 나오니까 제법 신기하더라구요. 다른 장면은 별로 남아있지 않고 어린 동자승이 처마에서 떨어진 새 새끼를 줍던 게 선명하게 남아 있구요 죽은 노스님의 다비와 장작더미며 불길이 남아 있어요. 비엔나 카페에 가서 카푸치노와 꼬냑 한잔을 마시면서 혼자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분데스플라츠 우리 동네에 도착한 건 주위가 캄캄해진 뒤예요. 내가 층계를 천천히 올라가 열쇠를 꽂고 문을 열려는데 등 뒤에서 마리가 자기 방 문을 열고 말했어요.

유니, 손님이 왔어.

손님이… 나에게?

그가 머릿짓으로 나를 불러들였어요. 나는 빨려들어가듯이 그네의 방으로 들어섰지요. 내가 마리를 따라서 들어서니 우리가 늘 앉던 소파에 웬 부인이 앉았고 젊은 여자가 식탁 앞의 나무의자에 앉았다가 얼른 일어났어요. 나는 그저 어리둥절해서 그네들을 바라보았지요.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물었습니다.

한윤희씬가요?

네 그런데….

전 이희수씨 동생이에요. 오빠에게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이쪽은 저희 어머니세요.

나는 그제서야 허리를 굽혀 그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데리고 내 방으로 왔지요. 노부인은 쓰러질 듯 소파에 앉으면서 중얼거렸어요.

미안해요. 나 좀 길게 앉을게요.

나는 얼른 팔걸이에 쿠션을 올려 드렸지요.

이렇게 기대고 누우세요.

부인은 한 팔을 얼굴 위로 얹고 누웠고 누이는 한동안 말이 없이 고개만 숙이고 앉아 있어요.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내가 물었고 거의 동시에 누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재빨리 부르짖었어요.

오빠가 돌아가셨어요.

나는 멀뚱히 그네를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어요.

그분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직 안오셨는데요.

하고 대꾸하는 순간에야 나는 스스로 내 말이 틀렸다는 걸 뒤늦게 알아버렸죠.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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