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제균/선거법 改惡의 뿌리는…

  • 입력 2000년 1월 18일 20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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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7일 선거법 재협상 6개 원칙을 제시하자 한나라당에서는 “협상 진행상황을 일일이 보고받아 놓고 뒤늦게 무슨 딴소리냐”고 공박했다. 언론도 “DJ가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은 협상의 개략적인 결과만을 보고받았을 뿐 구체적인 진행상황은 몰랐다”며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박준영(朴晙瑩)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은 18일 “일부 언론에서 오해를 했거나 협상과정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려 한다”며 흥분했다.

매사를 직접 챙기는 것으로 평이 난 김대통령이 협상상황을 몰랐다는 주장에 대해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협상내용을 알았든 몰랐든 국민회의 총재를 겸하고 있는 이상, 김대통령은 합의 결과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는 하지 못할망정 ‘제3자’ ‘국외자’처럼 입장을 취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라고 해서 이 대목에서 별로 다를 게 없다. 이총재도 제1야당이자 유일야당의 수장(首長)으로서 협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이총재는 18일 ‘1인1표제 고수’ 등 선거법 협상결과를 전면 부정하는 재협상 원칙을 발표했다. 더구나 이총재는 ‘1인2표제 반대(14일)→1인2표제 수용(15일)→1인2표제 반대(18일)’에서 드러나듯이 조변석개(朝變夕改)였다.

이총재는 회견 모두에 “송구스럽다”고 한마디를 하긴 했으나 회견 내용은 “김대통령은 반성해야 한다”며 DJ 비난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우리는 올바른 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상대가 있어서 야합적 협상을 한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고 억울해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여야 총재가 보여준 이런 장면들이야말로 ‘정치개악’의 연원(淵源)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박제균 <정치부기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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