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규철/'밀레니엄 방정식'

  • 입력 2000년 1월 17일 20시 06분


개혁과 상식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린 여야 정치개악협상에 공천부적격자 명단까지 겹치면서 정치판이 어수선해진 요즈음 바깥세상은 바깥세상대로 돌아가는 것이 심상치 않다. 지난주 세계 최대 인터넷회사 ‘아메리카 온라인(AOL)’과 역시 세계최대 미디어그룹 ‘타임워너’가 합병해 자본금 3500억달러(약 395조원)의 거대한 공룡(恐龍)기업이 태어났을 때 세상은 깜짝 놀랐다. 지금 형편으로도 각자 잘 먹고 살 만한데 왜 합병했을까. 한마디로 정보통신, 미디어, 연예산업이 한 덩어리로 엮어진 더 큰 시장을 만들어 더 큰돈을 벌자는 것이다. AOL인터넷 가입자는 전세계적으로 2000만명, CNN 외에 케이블TV 잡지 음반 영화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타임워너계열사의 총 가입자는 1300만명. 합해서 3300만명의 소비자가 모인 거대시장이 단숨에 만들어졌으니 놀랄 만도 하다.

그런데 그 큰 덩치를 움직이는 핵심은 바로 인터넷이다. 소비자들의 컴퓨터, 이동통신장비, 그리고 TV화면 속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가면서 3300만명의 거대한 시장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말이 합병이지 실은 인터넷 첨단기술(AOL)이 오래된 매체(타임워너)를 삼켜버린 것이다. 여기서 다시 지금 미국기업들의 키워드가 거대시장(mass-market) 만들기란 것을 알아야 한다.

인터넷의 위력은 지구촌 곳곳에서 기존 경제질서는 물론 사회구조까지 크게 흔들고 있다. 디지털 지각변동(地殼變動)이다. 미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박사의 전망으로는 인터넷을 통한 정보유통량이 매년 100%씩 늘어난다니 상상을 절하는 변화속도다.

인터넷 역풍에 밀려 날려가 버릴 것인지, 아니면 순풍으로 활용할 것인지 그 선택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여기서 살필 일이 있다. 인터넷은 사실상 이미 미국 식민지다. 인터넷을 지배하는 것은 단연 영어다. 인터넷주소(website), 주고 받는 편지(E-mail)가 거의 영어다. 전세계 인터넷사업 수입의 85%, 인터넷기업 주식가격의 95%도 미국회사 몫이다. 결국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아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새로운 세기 또 다른 화두는 인구다. 세계 인구에 관해 지금까지는 ‘맬서스’론이 교과서였다. 인구증가를 조절하지 않으면 의식주(衣食住)의 부족으로 위기에 처한다는 시한폭탄론이다. 유엔 추정에 의하면 지난해 60억명을 돌파한 세계 인구는 2050년 90억명이 된다. 그런데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국 인구는 늘어나지만 선진국 인구는 출생률 저하로 줄어든다. 산봉우리 높은 곳엔 깊은 골도 있다는 이야기다.

30년이 지나면 유럽 일본은 물론 12억명의 중국 인구도 내리막길이다. 100년 안에 유럽인구는 1억여명이 감소한다. 현재 1억2600만명의 일본 인구는 2050년 1억100만명으로 줄어든다. 노인층이 늘어나고 사회적 역동성이 떨어진다. 우리(남한) 인구도 2030년경 5200만명을 정점으로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미국만이 안정된 인구증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유럽 국가들에선 궁리가 한창이다. 삶의 질 유지에 필요한 기술인력 부족을 어떻게 메우느냐는 것이다. 탐탁지 않았던 미국식 이민개방문제가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95년의 인구수준을 유지하려면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는 2025년까지 1억3500만명의 이민자가 필요하다. 고급 기술인력만이 아니라 하급 기술자, 일용 근로자도 아쉽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인구 대이동은 피할 수 없는 새 물결이며 거기에 생존방정식이 얽혀 있다. 앞날을 보는 눈이 있다면 하루 빨리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아니면 100년 전처럼 또 뒤지고 만다. 답은 하나, 인터넷기술을 갖추고 국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세련된 인력을 길러내는 길뿐이다. 어차피 앞으로는 국경을 넘나들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된다. 우리의 인터넷 인구가 이미 1000만명을 넘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과학 정보 문화 교육부문 육성공약의 재원조달을 놓고 부처간에 말이 많다니 어쩌자는 일인가. 총선용 당의정(糖衣錠)이 아니고 100년 초석의 의지라면 말이 필요 없다. 실천뿐이다. 또 두고두고 다짐을 받아내야 할 일이다.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바깥세상인가.

최규철<심의실장>kih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