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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월 10일 21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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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벨트 착용율 30%대’. 2002년 월드컵 경기를 2년여 앞둔 우리의 현주소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경찰 병력을 총동원해 전쟁을 치르듯 단속을 벌여 한 때 안전벨트 착용이 정착되는 듯 했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산하 교통과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88년 이후 안전벨트 착용률이 꾸준히 늘어 91년엔 운전자의 83.3%가 “운전시 안전벨트를 착용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이후 93년 72%, 95년 67.5%, 97년 65.2%로 점점 떨어지더니 98년엔 36.6%까지 내려갔다. 이렇게 안전벨트 착용율이 떨어진 것은 경찰의 느슨한 단속과도 무관하지 않다.
안전벨트 미착용자에 대한 경찰의 단속이 97년엔 143만2692건에 달했으나 98년엔 86만620건으로 크게 줄었다. 경찰 단속과 안전벨트 착용률 간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회사원 윤모씨(33)와 한 택시 운전사와의 대화는 국내 운전자들의 안전벨트에 대한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저씨도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네요. 지금까지 안전벨트를 맨 택시기사를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윤씨)
“그거 매면 불편하고 갑갑해서….” (D운수 택시기사)
“아무리 불편해도 그렇지, 그러다 덜컥 사고라도 나면 위험하지 않겠어요?” (윤씨)
“괜찮아요. 서울 시내에서는 교통이 워낙 막혀 ‘쌩쌩’ 달릴 수도 없지만 설사 사고가 난다 해도 크게 다치지도 않아요.” (택시기사)
한국교통장애인협회에 따르면 97년 이후 교통사고 건수와 사망자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교통사고에 따른 장애인 수는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교통안전공단 교통사고분석센터는 안전벨트 등 보호장구 착용률 감소가 그 원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98년의 경우 23만9731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9057명이 사망하고 34만564명이 다쳤는데 이중 안전벨트 등 보호장구 착용자는 절반도 채 안되는 16만7401명에 불과했다는 것. 운전자의 치사율은 보호장구 착용자가 11%, 미착용자는 16%로 나타났다.
미국 국가안전협회(NSC)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차량 충돌사고시 안전벨트를 착용했을 경우 앞좌석 승차자의 사망률은 45%, 중상률은 50% 감소한다.
NSC는 체중이 60㎏인 운전자가 시속 50㎞로 달리다 반대 편에서 같은 속도로 달려오는 자동차와 정면 충돌했을 때 운전자는 18t의 쇳덩어리에 부딪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전벨트를 맸다면 그 충격은 2t로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
교통개발연구원 설재훈박사는 “안전벨트 착용률을 90% 수준까지 끌어올리면 차량과 차량간의 사고로 인한 사망자를 20%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한국 안전벨트 착용률 선진국의 절반 못미쳐▼
미국 암학회가 얼마 전 ‘수명 단축표’를 발표한 적이 있다. 내용 중에는 안전벨트 착용 여부가 수명에 얼마만큼 영향을 주는 지도 들어 있다.
암학회측은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운전할 때마다 6초씩 수명이 단축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하루에 4번 운전석에 앉을 경우 1년에 146분(2시간 26분) 수명이 단축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안전벨트 착용률이 한 때 70%를 넘기도 했으나 최근엔 30%대로 떨어졌다. 미국의 68%, 일본의 79%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착용률이 낮아진 것은 경찰의 단속이 느슨해진 탓도 있지만 운전자 스스로 안전벨트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운전자들은 가까운 거리를 운전할 때는 흔히 안전벨트가 필요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 고속도로안전협회(NHTSA)에 따르면 교통사고의 75%가 자기집 반경 40㎞ 이내에서 일어난다는 것.
교통사고는 운전자의 의지와 관계 없이 일어날 수 있다. 사고시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치명적인 사고가 줄면 운전자 자신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이득이다. 미국은 올해 안으로 안전벨트 착용률을 8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 목표가 달성되면 1년에 4194명의 사망자와 10만여명의 부상자를 구할 수 있고 67억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사소한 일로 생각되는 안전벨트 착용. 하지만 알고 보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핸들을 잡기 전에 먼저 안전벨트를 매 자신의 생명도 지키고 사회적으로도 보탬이 되는 시민이 되자.
박용훈(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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