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배인준/경제팀 바꿀 때가 됐다

  • 입력 2000년 1월 7일 07시 12분


장관들을 총선에 내보내기 위해 개각하는 것을 그저 그러려니 할 수는 없다. 특히 경제장관들을 여당후보로 내세우는 건 국민경제에 해를 끼친다. 강봉균(康奉均)경제팀에서 결국 몇명이 선거판에 불려나갈지 모르지만 몇달 전부터 여러 경제장관(급)이 거명돼 왔다. 시장과 기업과 민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장관들의 이름이 거의 빠짐없이 나돌았다.

▼ 시장통제 위험수위 ▼

이들은 그 때부터 절반쯤 정치인이 돼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표(票)가 눈에 어른거려 나라 전체보다 지역구를 더 걱정했을지 모른다. 업적을 급조하고 싶은 마음도 더 생겼을 듯하다. 그래서 경제의 거품을 더 열심히 만들어내지는 않았을까. 그러잖아도 선거용 경제성적 올리기와 선심정책 짜내기에 동원돼왔던 터였다. 예산에 개인 득표용 사업을 교묘하게 끼워넣었다면?

출마 때문에 바뀌는 경제장관은 한두명에 그칠지 모른다. 하지만 여당측과 당사자 사이에 지역구 배정문제가 쉽게 풀렸더라면 줄줄이 현직을 내놓았을 가능성이 컸다고 한다. 요컨대 현 경제팀은 유지돼도 그만이고, 완전히 해체돼도 별탈 없는 존재임을 정부여당 스스로 말해주는 셈이다.

그렇다면 아예 경제팀을 물갈이하라고 권하고 싶다. 총선후보 땜질용으로 현 경제팀 안에서 한두자리 바꾸거나 승진시키라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재정경제부장관을 비롯한 서너개의 핵심포스트를 현직장관이 아닌 인물들로 교체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임기 중후반의 경제운용 책임을 맡기라는 권고다. 선거 때문에 개각문제가 대두되지 않았더라도 경제팀을 교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현 경제팀의 핵심은 강봉균재경부장관 이기호(李起浩)청와대경제수석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 진념(陳稔)기획예산처장관 전윤철(田允喆)공정거래위원장 등이다. 이들은 김대통령의 경제친정(親政)체제를 실무적으로 잘 뒷받침해왔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우리 경제엔 새로운 관치구조가 뿌리내렸다. 여전히 정치논리에 휘둘려 경제논리 시장원리가 뒷전으로 밀린 사례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위기상황이라는 현실 때문에 초법적(超法的) 관치와 시장개입까지 상당부분 묵인돼 왔지만 이를 교정(矯正)해야 할 때가 됐다. 정부가 계속 이대로 밀어붙이면 새로운 통제경제국가로 전락할 우려마저 있다.

그런데 현 경제팀에 관치와 시장왜곡의 폐해를 털어내는 결자해지(結者解之) 역할을 맡기는 것은 어리석다. 이미 관치의 맛에 중독된 그들로선 설혹 방향을 틀고 싶어도 자기억제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온 행태로 봐서는 앞으로도 자기교정보다 변명과 자기합리화에 계속 집착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 폐해 청산은 새팀이 ▼

그래서 지난 2년간의 정책운용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물들을 중심으로 새 경제팀을 출범시켜 ‘진정한 시장 바로 세우기’를 꾀할 필요가 있다. 새 경제팀은 노사문제 등 현 경제팀에 의해 원칙이 실종된 현안들의 방향을 재정립하고, 현 경제팀이 명백하게 한계를 보여온 공기업개혁 등도 강도 높게 다시 추진해야 한다. 특히 정치로부터 중립적 입장을 취하면서 총선의 경제적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 우직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DJ정부는 그래야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 경제팀의 지연 학연 출세배경 등 특수한 동지성(同志性)이 낳고 있는 대외 배타성, 정책논의와 운용의 폐쇄성, 스테레오타입의 좁은 정책시야 등도 극복돼야 한다. 김대통령과도 가까운 어느 학자는 현 경제팀을 ‘국화빵’이라고 비아냥거린 적이 있다. 철저하게 동류(同類)라는 얘기다. 김대통령이 집권 후 2년간 경제팀의 인적 컬러를 이렇게 단색화(單色化)시킨 것은 그가 표방하는 화합철학에도 맞지 않다.

현 경제팀 사람들은 대통령의 눈빛만 보고도 그 심중을 헤아릴 만큼 감(感)이 탁월한 관료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지 모른다. 하지만 새롭게 전개되는 미답(未踏)의 21세기 경제비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관료적 ‘충성능력’과 대통령의 입맛에 맞추는 업무소화능력만으론 부족하다. 김대통령은 더 폭넓게 인재를 찾아 보다 다양한 색깔의 인물들로 새 경제팀을 구성해 선의의 정책경쟁과 내부견제도 가능토록 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경제부총리를 부활시켜 경제팀에 더 많은 정책권한을 위임할 생각이라면….

배인준<논설위원>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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