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박춘호/한중漁協 빈틈없는 준비를

  • 입력 1999년 12월 31일 19시 05분


제2차 세계대전 후 해양법은 비약적으로 변했다.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 제도의 성립이 그 대표적 예다. EEZ는연안에서200해리(370.4㎞)까지 모든 자원의 탐사 개발 보존 관리에 관해 연안국이 ‘주권적 권리’를 행사하는 제도다. 77년 이래 현재 130여개국이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작년에 EEZ에 대한 인식이 미흡해 한일어업협정 과정에서 불필요한 물의를 일으켜 어민들에게 손해를 입힌 꼴이 되고 말았다.

이제 한중어협 타결을 앞두고 그러한 사태가 재연되지 않기를 바라는 아쉬움에서 EEZ의 배경과 대책에 대하여 몇 가지 말하고자 한다.

1945년 9월 미국은 영해 밖 공해의 일부에 관할권을 확장해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른바 트루만 선언이다. 즉각 반응을 보인 것은 중남미 국가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거리까지 명시해 200해리를 주장했다. 이 숫자의 기준도 애매한 것이었다.

1952년 한국이 선포한 평화선 역시 이러한 선례에 따른 것이었다.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등 몇몇 선진 해양국들도 즉각 항의해 평화선의 불법성을 제기했다. 독도 문제도 동시에 발생했다. 그후 한일간의 평화선 싸움은 1965년에 일단락되었다가 EEZ 등 때문에 근년에 다시 불이 붙었다.

EEZ로 인해 전개되는 사태 중에 재미있는 것은 태평양에 외로운 섬 하나를 가진 나라는 그것이 기점으로 인정되면 400해리 직경의 원 크기의 EEZ를 갖는다. 그 면적은 무려 43만 평방해리로 한반도의 2배쯤이나 된다. 실제로 이같이 EEZ제도의 혜택을 누리는 나라들은 미국 캐나다 러시아 일본 인도네시아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등인데 이 8개국은 새로이 국가관할에 들어간 공해면적의 거의 45%를 갖는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는 영토문제 등으로 EEZ 경계획정을 20년이나 미루다가 어업문제 때문에 우선 EEZ 내에서 조업문제만을 잠정적으로 합의한 것이 지난번 한일 어협이다.

그런데 새 해양법에서는 EEZ내의 외국 어선의 조업은 오로지 연안국의 재량에 속한다. 다시 말해 허가 없이는 서로 한 발도 못 들어간다. 단지 조건부로 허용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조업하던 어장에 출어를 못하게 되면 그것은 EEZ제도 때문이지 한일어협 때문이 아니다.

바꾸어 말해 그것이 아니면 그 어장에 계속 출어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 어장도 외국 어선들에 계속 개방해야 할 것이다.

77년에 EEZ라는 공룡이 수평선에 나타나자 다른 어업국들은 바로 어민 보호에 나섰는데 한국은 꼬리에 불이 붙은 후에 대책을 세우니 어민들만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다행히 한일간에는 그 나름대로 일단락됐으나 한중간에는 아직 미해결 상태다. 중국 연안의 자원보존조치가 걸림돌 같은데 결국 그쪽의 EEZ에 속할 어장이라면 한국의 주장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일 게다.

한중어협에서도 한일어협에서와 같은 사태가 재연되면 한국 어민들은 더욱 힘들게 될 수 있다.

EEZ에 관한 한 한국은 자연의 혜택을 못 받았다. 그래서 한국의 어업은 다른 나라들의 EEZ에 의지해야 할 바가 많다. 이제 세계 어업은 EEZ라는 보편적 기준에 따르기 마련이니 한국의 입장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박춘호(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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