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9년 12월 30일 19시 2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수십년 동안 타임스스퀘어는 이국적이고, 에로틱하고, 신경질적이었다. 때로는 그냥 멍청한 바보 같은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타임스스퀘어가 지루했던 적은 결코 없었다.
뉴욕 사람들은 이곳을 세계의 교차로라고 불러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물론 뉴욕 사람들은 자기들의 도시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니까, 브로드웨이와 42번가가 만나는 작은지점에세계적인 의미를부여하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과장하기를 좋아하는 뉴욕 사람들의 취향이 이번만은 우연히 사실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를 보며 어떤 사람들은 쇠퇴한 제국을 생각한다. 로마의 베네치아 광장은 광활하다. 그러나 타임스스퀘어는 분명히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교차로이다. 사라져가는 한 해의 마지막 몇 초 동안에는 특히 이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때가 되면 타임스스퀘어에 모여든 수백명의 사람들과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원 타임스스퀘어(One Times Square)라는 이름의 타워 꼭대기로 반짝이는 공이 서서히 내려오는 광경을 지켜본다.
어떤 사람들은 뉴욕에서 벌어지는 이 공동체적 사건이 없다면 새로운 1년도, 새로운 세기도, 새로운 천년도 밝아오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한다.
그러나 20세기가 막 시작될 무렵만 해도 지금 타임스스퀘어가 있는 자리는 롱 에이커 스퀘어라고 불리는 보잘 것 없는 장소였다. 이곳의 이름이 타임스스퀘어로 바뀐 것은 1904년에 뉴욕타임스가 이곳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었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 타임스스퀘어는 뉴욕의 심장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에는 벌써 수십 개의 극장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1929년에 증권시장이 붕괴하기 전에는 한 시즌에 무려 264편의 연극이 76개의 극장에서 공연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곳은 또 뉴욕 사람들이 뉴스를 듣기 위해 수천명씩 몰려드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대공황과 함께 타임스퀘어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타임스스퀘어는 곧 지저분한 상점가와 천박한 섹스쇼를 의미했다. 마틴 스코세지는 1976년에 만든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마치 지옥을 보는 것처럼 위협적이고 소름끼치는 이곳의 풍경을 훌륭하게 묘사했다.
뉴욕의 지도자들은 몇 년 간격으로 이곳에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저런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타임스스퀘어의 추락을 되돌릴 길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1990년대에 부동산 붐이 일면서 마치 기적처럼 타임스스퀘어의 얼굴이 바뀌기 시작했다. 섹스숍들이 모두 밀려나간 자리에 디즈니와 워너브러더스가 진군해왔다. 디즈니는 보석 같은 충성심과 정부의 저금리 융자금으로 오래 전에 버려진 뉴암스테르담 극장을 재건했다. 재건하기 전 이 극장의 1등석 바닥에는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또 거대한 TV 스크린이 거리에 설치되면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중요한 운동경기를 보러 타임스스퀘어로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다.
옛 뉴욕타임스 건물 양옆에는 다른 거대 언론 기업의 빌딩들이 들어섰다.
물론 타임스스퀘어의 새로운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뉴욕 사람들은 쇼핑센터 스타일의 상점가가 낯설고, 심지어는 신경에 거슬리기까지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이 휘둥그레진 관광객들과 유모차보다 마약 거래인과 포주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타임스스퀘어는 그동안 꾸준히 변해왔으며,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새로운 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에도 이곳은 여전히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남아 있다.
(http://www.nytimes.com/specials/times-square/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