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1000년 타임캡슐]20세기 유물

  • 입력 1999년 12월 28일 19시 47분


▼머리카락 왜-어떻게 선정했나?▼

만약 유전구조에 관한 인간의 지식이 우리의 예측대로 발전한다면 서기 3000년의 유전학자들은 아주 작은 신체 표본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재능과 기질, 신체적 특징, 즐겨먹던 음식, 흡연 여부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28명의 사람에게서 각각 6올씩 뿌리째 기증 받은 머리카락과 포유류 8종의 털을 타임캡슐에 넣기로 했다.

처음 머리카락을 타임캡슐에 넣겠다고 했을 때 많은 학자들은 머리카락에는 DNA가 너무 조금 들어있다면서 차라리 혈액 샘플을 넣으라고 했다. 입 안쪽을 면봉으로 닦아서 그 면봉을 타임캡슐에 넣으라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혈액 샘플은 너무 의사냄새가 났고, 입안을 닦은 면봉은 “천년이나 된 남의 침을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라는 내 동료의 말에 곧바로 목록에서 삭제되어 버렸다. 결국 처음 생각대로 머리카락을 타임캡슐에 넣기로 결정한 다음 대두된 문제는 누구의 머리카락을 넣느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하마드 알리, 바츨라프 하벨, 밥 딜런, 피델 카스트로, 넬슨 만델라, 달라이 라마 등 유명인사들의 머리카락을 제공받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요청에 대한 이들 인사들의 답변은 “너무 바쁘다”는 것이었다. 머리카락 6올 뽑는데 몇 초나 걸린다고 바쁘다는 건지. 한편 클린턴 대통령의 사무실에서는 대통령의 DNA를 얻고 싶으면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에게나 가보라며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들이 우리 시대에나 통하는 전설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20세기 지구상의 인구분포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머리카락을 제공받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내가 도움을 요청한 곳은 뉴욕의 유엔본부였다. 그렇게 해서 각 대륙의 19개국에서 온 유엔직원들이 모였다. 이들은 출신국뿐만 아니라 혈통과 성장배경, 생활습관 면에서도 매우 다양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러시아에서 온 니콜라이 갈킨이라는 남자는 굳게 결심을 한 모습으로 “나는 미래를 위해 한꺼번에 뽑겠다!”고 소리치더니 정말로 단번에 짧게 깎은 머리카락 6올을 냉큼 뽑아냈다. 반면 도미니카 공화국의 밀라그로스 멘데즈는 “샤워할 때는 그렇게 잘 빠지던 게 왜 필요할 때는 안 빠지지?”라면서 한참동안 머리카락과 씨름을 했다.

이들의 머리카락 수집이 끝난 뒤 우리는 수집범위를 좀 더 넓혀서 오스트리아 원주민, 아이슬란드인, 한국계 미국인 유엔직원에게서도 머리카락을 제공받기로 했다. 한편 타임캡슐에 들어갈 털을 제공해줄 동물로는 아프리카 물개, 검은 코뿔소, 눈표범, 다람쥐원숭이, 고릴라를 골랐다.

또한 유명한 동물들은 유명한 사람들처럼 거절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특수한 키보드를 이용해서 의사소통을 하는 보노보 원숭이 칸지, 복제양 돌리에게서도 털을 제공받기로 약속을 받아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9월에 119세가 된 세계 최고령 노인 사라 노스 할머니의 머리카락도 타임캡슐에 함께 넣기로 했다.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millennium/m6/hair―angier.html)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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