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朴柱宣과 청와대시스템

  • 입력 1999년 12월 23일 18시 52분


사법처리 여부를 놓고 검찰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렸던 박주선(朴柱宣)전청와대 법무비서관은 결국 구속됐다. 옷로비의혹사건과 관련한 그의 축소은폐조작 혐의에 대해 법원은 ‘유죄’라고 판단한 수사팀 의견에 일단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는 “인간의 편견과 선입견이 두렵다”는 알쏭달쏭한 항변을 남겼다지만 객관적 증거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김태정(金泰政)전검찰총장 부인을 구하기 위해 공문서를 유출하고 불리한 증거들을 감춘 혐의다. 그러나 ‘박주선 사건’은 그런 개인 범죄의 차원을 훨씬 넘는 의미가 있다.

박전비서관은 직급으로만 보면 1급 공무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과거정권하에서 차관급인 검사출신 수석비서관이 맡았던 일이 주어졌다. 문제의 사직동팀 지휘감독을 포함해 공직사회에 대한 사정(司正)업무를 총괄하고 고급 공무원을 새로 인선(人選)할 때 적격여부를 심사하는 기능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어떤 수석비서관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쥐었던 청와대의 핵심세력이었다. 박전비서관 개인의 불행과 국정(國政)의 혼란은 바로 그런 청와대 시스템에서 잉태됐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가 사정분야를 농단(壟斷)할 수 있었던 것은 권한이 집중된데다 대통령에 대한 보고채널이 단선적(單線的)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옷사건의 경우 당초 대통령이 사건성격이나 민심동향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검찰 안팎에서 ‘정치검사’로 낙인 찍힌 김태정씨를 ‘올바른 검사’라며 법무장관에 임명한 것이라든가, 김씨의 부인을 둘러싼 옷사건 관련 언론 보도를 ‘마녀사냥’으로 몰아붙인 것 등은 단선적 보고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제2, 제3의 박주선’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불신하는데서 시작한다. 그 불신은 제도적으로 권력에 대한 견제와 분점(分占)으로 표현된다. 3권분립이나 지방자치제도 등은 좋은 예다. 권력이 독점되면 남용하기 쉽다는 철학에 근거한 것이다. 이런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청와대 비서실 시스템은 문제인 것이다. 옷사건만 해도 만약 대통령이 다양한 국민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했다면 박전비서관이 왜곡 또는 허위보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 주변의 권력작용 전반에 대한 심층적 재검토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아울러 검찰도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을 뼛속 깊이 새겨야 한다.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있다면 옷사건이 꼬박 1년을 끌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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