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의 우리문화 우리건축]홍콩銀 왜 '누드빌딩'인가

  • 입력 1999년 12월 12일 19시 47분


14세기 이탈리아는 상업자본주의 시대였다. 자본의 힘은 신이 아닌 인간을 세상의 중심에 놓았다. 르네상스를 연 그 힘이 은행을 만들었다. 상업 자본주의의 확산과 함께 은행도 세계로 퍼졌다.

믿음. 이것이 은행을 존재하게 하는 근거다. 은행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예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믿음을 확신시키는 도구로는 건물처럼 좋은 것이 없었다. 묵직하고 철옹성같은 건물의 외관은 당신의 예금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도구였다. 그것이 고전적인 은행 건물의 모습이었다.

안전한 은행을 넘어 세계 최고의 은행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진 은행가들도 있었다. 그 도구는 역시 건축이었다. 1935년 홍콩에 홍콩상하이은행(현재는 홍콩은행) 본점이 세워질 때 그 지침은 세계 최고의 건물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1979년 그 건물을 대체할 새로운 건물의 현상 설계를 낼 때도 그 지침은 변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지은 건물이 완성되었다. 비싸다고 반드시 좋은 건물이 되지는 않지만 건축가는 그 투자가 가치가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건축가가 만든 건물은 철과 유리로만 이루어졌다. 세계 최고라는 자신감은 그 안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의 기계 작동부까지 모두 유리 너머로 보이게 되었다. 건축가의 독창적인 설계로 1층은 기둥도 없이 완전히 개방되었다. 시민들이 다니는 거리의 한 부분이 되었다.

시각적으로 개방적인 이 은행이 안전하냐고 묻는 이는 없다. 이 건물은 그런 고전적인 개념을 뛰어 넘었다. 21세기가 되어도 이 건물이 지닌 세계 최고의 자부심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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