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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2월 3일 19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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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해명했어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지금 시중에 나도는 ‘뿌리’에 관한 소문 중에 청와대를 가리키는 것이 많고 그 중에서도 이희호(李姬鎬)여사에 관한 말이 많다는 것을 의식한 듯, 지난 주 이에 대해 직접 해명했다. 자신은 물론 이여사에게도 교계지도자 등을 통해 로비가 들어왔지만 단호히 뿌리쳤다는 것이다.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여사 관련 소문은 말끔히 가시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른바 사직동팀 최초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이나 최종보고서에도 이여사에게 로비를 시도한 대목들이 여러 군데 나온다. 특히 최근 공개된 라스포사사장 정일순씨가 지난 1월 내사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여사가 라스포사의 단골고객임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또 사실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정씨는 현정권 출범 후에도 이여사를 만난 것으로 이 편지에서 밝히고 있다.
이여사 관련 소문이 터무니없는 것이라면 이여사로서는 대단히 억울한 일이다. 청와대나 여권에서 진작 솔직하게 적극적으로 해명을 했어야 한다. 그 좋은 기회가 지난 8월의 국회 청문회장이었다. 옷로비가 처음 터졌을 때부터 이여사의 관련설이 나돌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청문회를 통해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릴 것으로 기대했다. 소문대로 이여사는 라스포사의 옷을 입었는지, 그 집 단골손님인지, 정일순사장과는 언제부터 알게 됐고, 친분관계는 어느 정도인지 등이 궁금했다.
그런데 청문회에서는 어떠했나. 야당의원들이 정일순사장과 이여사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하려 하면 여당의원들은 “옷로비와 무관한 얘기로 청와대를 끌고들어가려고 하느냐”며 말문을 막았다. 심지어 여당의 한 여성의원은 야당측으로부터 이여사의 옷구입 관련 질문이 나오자 “영부인은 20년간 남대문시장 옷을 사입은 분”이라며 말을 막고 나섰다(이 여성의원은 그 후 신당발기인 1차 명단에 포함됐다).
한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가, 그 전에는 제1야당총재의 사모님이, 때로는 유력한 대통령후보의 부인이 시장옷만 사다 입었다는 얘기는 자랑거리도 아닐 뿐만 아니라 사실도 아닐 것이다.
▼라스포사 옷은 없나▼
특히 퍼스트 레이디가 된 후에는 보다 세련되고 우아하게 갖춰 입어야 하고 그러려면 고급옷도 마땅히 구입해야 한다. 시장에서 고른 스카프 하나라도 그 색상과 디자인이 자신의 개성과 취향에 맞으면 훌륭한 패션이 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시장옷만 입는 것이 검소요, 선(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자기 능력 범위 안에서 백화점이나 고급 옷가게의 옷을 입는 게 결코 죄가 될 수는 없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 패션의 미학은 개성과 다양성에서 나온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남편의 수입이 뻔한 공직자부인들이 분에 넘쳐도 한참 넘치는 고급옷을 무더기로 사들이는 몰염치하고 천박한 사치성향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검소한 척하는 이중성, 또는 엄숙주의가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로열패밀리가 국민과 친해지려면 보다 투명하고 솔직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알고 싶다. 대통령부인께서는 그 국회의원의 말대로 20년간 남대문시장 옷만 입었는지,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한 옷은 몇 벌이나 되는지, 문제의 라스포사에서 산 옷은 없는지, 있다면 몇 벌이나 샀는지, 라스포사 것 이외의 고급옷은 어느 어느 디자이너의 것을 구입했는지, 특히 이번 필리핀방문때 입고 간 옷은 참 좋아보이던데 어디서 만든 것인지…. 무슨 옷을 입느냐는 것이 로비의 본질과는 무관하겠으나 이런 것들을 소상히 밝힐 때 이여사와 청와대를 감싸고 도는 갖가지 소문들은 사라지고 국민과 청와대의 간격도 좁혀질 것이다.
어경택(논설실장) 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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