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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1월 4일 19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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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개봉 비난-찬사 교차▼
폭력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영화는 10월 미국에서 개봉됐을 때 ‘걸작’이라는 찬사와 ‘테러리스트의 교본’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최근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들은 폭력에 대한 선악의 가치판단을 거둔 채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에서 비밀조직의 리더 타일러(브래드 피트 분)는 한 발 더 나아가 현대인이 일상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처방으로 폭력을 제시한다.
▼중산층 파괴본능 해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하고, 무언가에 매달리기를 원하는 중산층 샐러리맨 잭(에드워드 노튼 분). 암환자들의 모임에 끼어 실컷 울면서 위로를 받던 그는 우연히 타일러를 만난 뒤 폭력에 빠져든다.
타일러는 비밀조직인 파이트 클럽을 이끌면서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싸우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도록 충동질한다. 이곳에 모여든 남자들은 녹초가 되도록 서로를 때린 뒤 새로운 자아를 발견한다.
일상에서 억눌렸던 남성의 파괴적인 본능이 파이트 클럽에서는 최고조로 발현된다.
“자기개발은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자기파괴만이 삶의 해답이다.” “가진 것을 모두 버릴 때 비로소 너는 자유를 얻게 된다.”…. 영화 속에 수시로 나오는 타일러의 현학적인 궤변은 때론 유치하지만, 60년대 히피족같은 반문명주의자들의 철학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끝까지 타일러의 폭력 철학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테러집단으로 변질되는 파이트 클럽에 대한 비판적인 관찰, ‘식스 센스’처럼 영화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마지막 반전을 통해 폭력 그 자체보다 한 중산층 시민이 어떻게 폭력에 중독돼가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현대사회 폭력성 고발▼
감독은 개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현대사회를 통렬히 풍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강렬한 폭력의 이미지 때문에 관객이 감독의 의도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데이비드 핀처가 ‘세븐’과 ‘더 게임’에서 보여줬던 세기말의 음울한 이미지, 속도감 있고 현란한 편집, 빼어난 스타일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에드워드 노튼, 브래드 피트, 헬레나 본햄 카터 등 쟁쟁한 출연진의 연기도 볼 만하다. 18세 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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