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송인수/"재벌에는 약해요"

  • 입력 1999년 10월 8일 19시 29분


6,7일 이틀간 열린 국회 재정경제위의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별 거리낌이나 스스럼없이 ‘두 얼굴’을 드러냈다.

6일 국세청 본청 국감에서 대다수 의원들은 삼성그룹 이건희(李健熙)회장 자녀의 변칙 증여 의혹을 제기했다. 이재용(李在鎔)씨 등 이회장 자녀들이 시가 5만4000원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209만주를 7150원에 매입한 것은 사실상의 증여라는 주장이었다.

세무관료 출신인 나오연(羅午淵·한나라당)의원은 상속법 조항까지 인용하며 증여세 과세를 주장했다. 변웅전(邊雄田·자민련)의원도 “부(富)의 변칙 세습 풍토를 전면 개조해야 한다”고 역설했고 한영애(韓英愛·국민회의)의원은 ‘재용씨 증여세 160억원 포탈 가능성 있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돌렸다.

그러나 7일 이회장 부자의 증인 채택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한영애의원은 ‘애국적 차원’ 운운하면서 이회장 부자의 증인 채택에 반대했다. 그러자 같은 당 정한용(鄭漢溶)의원은 “한의원이 이렇게 부드러운지 몰랐다”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변웅전의원은 ‘다른 재벌과의 형평성’을 거론하며 반대 쪽에 섰다. 나오연의원은 회의 전 기자들에게 “다시 생각해보니 상속세법상 문제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표결 결과 찬성 5명, 반대 19명으로 이회장 부자의 증인 채택은 ‘없던 일’이 됐다. 더구나 의원들은 관례를 깨고 인사 안건을 다룰 때나 실시하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표결해 각자의 기표 내용을 감추었다.

시민단체들은 불과 하루사이에 의원들의 ‘소신’이 뒤집히자 ‘삼성의 로비 탓’이라고 규정했다. 정치개혁시민연대는 8일 ‘재벌에 약한 국회의원’이라는 논평에서 “누가 봐도 명백한 변칙 상속 문제를 외면한 것은 국민 기만행위”라고 비난했다.

송인수<정치부>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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