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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9월 2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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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김판사는 쌀 한말씩을 들고 생계가 어려운 피고인 가족들을 찾아 다녔다. 재판을 두려운 일로 알고 항상 겸허한 자세를 잃지 않은 그는 ‘인간이 인간을 재판할 수 있는가’를 놓고 고뇌하는 삶을 살다 갔다. 그는 성직자에 가까운 판사였다. 일제 때인 1923년 한 독립투사에게 사형을 선고한 뒤 번민 끝에 홀연히 출가한 고 이찬형(李燦亨)판사도 법조계의 전설로 남아 있다. 뒷날 효봉(曉峰)스님이 바로 그다.
▽판사는 간혹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보통의 살인자와 다른 점은 ‘법의 이름으로’ 살인한다는 것뿐이다. ‘오판’에 의한 사형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따라서 재판제도의 역사는 오판을 줄여보려는 노력의 과정이었다. 개인적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급적 배제한다는 뜻에서 법관 3명이 함께 재판하는 합의부제도라든가 배심제도 등이 그런 것일 게다.
▽‘인간은 누구나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말은 항상 판사를 괴롭힌다. 그래서 판사는 겸허해야 한다는 덕목이 중요하다. 판사시절을 속죄하는 심정으로 여생을 살겠다고 선언한 어느 중년 퇴임판사의 ‘미리 쓴 유언장’은 그런 점에서 소중하게 들린다. 다짐대로 이루어지길 빈다.
〈육정수 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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