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210)

  • 입력 1999년 9월 1일 18시 23분


눈썹이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물론 우리는 현재 모두 쁘띠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다른 데로 넘어갔다.

이런 일이 다 세상 공부라구 소박하게 생각하면 돼요.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지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규정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들은 내 말을 되새기고 있는지 잠깐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다행히 음식이 들어왔다. 송영태가 그들의 잔에 맥주를 따랐고 나에게도 따르면서 말했다.

미안해. 이 두 사람 다 잠수함이야. 남자들끼리 쑥덕거리면 남들 보기에두 안좋구 해서….

나두 알구 왔어. 회나 실컷 사라 응? 전복도 좀 시켜. 많이들 드세요.

내가 처음보다 훨씬 상냥하게 나오자 그들은 마음이 놓이는 얼굴들이었다. 영태가 말했다.

민투위 구성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전국화를 해야만 하니까요. 아마 다음 주면 끝날 것 같은데 결성은 아무래도 다음 달 초가 될 것 같구요. 그래서 이 조직의 객관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텐데 투위 안에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행동조직을 구성해야만 할 겁니다.

눈썹이 말했다.

행동조직이라면 투쟁의 전면에 노출될텐데 아무래도 투위 지도부나 집행부는 뒤로 숨어야 되겠군요.

그렇죠. 노출되는 행동조직 안에서도 지원조와 공격조를 나누어야 하겠지요. 아마도 공격조는 전원 체포 구속될 겁니다. 지원조에서도 운 나쁜 사람들은 검거될 거요.

인원은 얼마쯤으로 잡고 있습니까?

한 학교에서 정예로 오십여 명 차출하고 그중에서 공격조를 십여 명씩 선발하고나서 나머지는 지원조나 시위대로 편성하면 될겁니다.

송영태가 눈썹에게 술을 따르더니 고개를 숙이고 잠시 기다렸다. 눈썹은 술을 반쯤 마시고는 송에게 물었다.

그런데 우릴 만나자구 한 게 무슨 일 때문입니까?

시위 주동한 도바리들 가운데서 투사들을 좀 선발해 주시오. 그리고 이번 일은 조 형이 총지휘를 맡아 주었으면 합니다.

그게 모두의 의견인가요?

반대와 찬성이 있어서 만장일치는 아녔어요.

찬성은…어떤 의견이죠?

조 형은 이미 지난 학기의 투쟁에서 검거된 모든 사람들의 진술 조서에 주동자로 나왔고 다른 동아리들에 해를 끼칠 요소가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경험이 많다는 것. 군대를 갔다 왔기 때문에 다시 끌려가 사회와 단절된 채로 녹화사업에 시달리지는 않을 거라는 점. 등등 많은 유익한 의견들이 있었어요.

송 선배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도 물론 찬성쪽이었어요.

반대는…?

기왕에 잠수함을 타구 있으니까 노출하지말고 비합 쪽이나 노학연투 쪽에서 지하 사업을 하기가 용이하다는 것. 복학생이니까 오히려 뒤에 남아서 학생회 후배들을 지도해야 한다는 것. 그 밖에 몇몇 비슷한 의견들이 있었지요.

눈썹은 위로 얼굴을 들고 잠시 고민에 빠진 것 같은 얼굴이더니 다시 눈 가에 힘을 주고 물었다.

송 선배 솔직하게 얘기해 주시죠. 내가 선도투를 하고 빵에 들어갈 이유를 말예요.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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