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칼럼]'뇌물'일 수 있는 名博의 옷

  • 입력 1999년 8월 27일 18시 29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 왜 빵만 달라고 하느냐.”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을 달라던 서민들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얘기는 너무 유명하다. 그러나 1989년에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맞아 열렸던 국제학술회의에서 한 세계적 권위자는 왕비가 그런 말을 한 일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의 평소 사치였다. 그래서 많은 국민은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고 확신했고 미워했다. 비슷한 경우가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황후 알렉산드라로, 그녀의 목욕탕은 전부가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사실은 전혀 아니었는데도 그녀의 평소 사치가 ‘국민 정서’에 맞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그 풍설을 믿고 극도로 미워했다.

◆새정권 실세들 줄줄이

옷 로비 사건의 청문회를 보면서 억울한 경우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고관 부인이란 사람들이 남편의 수입은 한정됐을 터인데도 국민은 국제통화기금(IMF) 긴축으로 고생하던 때 고급 의상실을 자주 출입하고 값비싼 쇼를 보러 다녔다는 일상 생활의 모습만으로도 옷에 국한된 실체적 진실과는 무관하게 비난의 매를 맞게 된 것이다.

“도대체 국민 정서법이란 게 대한민국 어느 법전에 들어 있느냐”는 항변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러나 고위 공직자들과 그 가족들의 몸가짐은 그만큼 조심스럽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집권 세력이 보여 온 생활 분위기는 점점 조심과 자제보다는 욕심으로 가고 있지 않느냐는 물음을 갖게 된다. 그 한 보기가 명예박사다. 집권 세력의 중심 대열에 서게 되면 거의 예외 없이 명박의 옷을 받는다. 물론 명박을 받을 만한 업적이 있는 사람에게 간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권의 실세들이 줄줄이 명박의 옷을 받아 입는 것은 어떻게 설명돼야 할까. 박정희(朴正熙)정권의 경우, 악명 높던 한 중앙정보부장이 같은 학년도에 서울의 두 대학교에서 명박을 받아 장안의 화제가 된 것을 필두로, 거의 전적으로 집권층 인사만이 명박을 받은 반면에 야당 인사는 거의 받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5,6공에서 비슷하게 일어났다. 그러더니 김영삼(金泳三)정권이 들어서자, 특히 민주계 실세라는 정치인들이 줄줄이 명박의 옷을 받았다. 현재의 공동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이 정권 출범 1년반 사이에 이 정권의 요인으로 명박의 옷을 받은 사람이 이미 20명을 넘어 30명을 바라본다. 정계의 요인들과 끈을 맺어 두는 것이 학교의 대외 로비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이른바 경영 마인드 위주로 명박의 옷을 준다면, 그러한 대학의 자세도 문제지만, 장관과 국회의원 및 지자체의 장(長) 등 공평무사하게 국정을 운영해야 할 고위 공직자들이 재직시에 경우에 따라서는 ‘뇌물’일 수 있는 명박의 옷을 받아도 좋은가.

◆걸쳐보지도 말아야

72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존 밀턴은 이 주의 한 대학이 제의한 명박을 깨끗이 거절했다. 대학들로 가는 예산 배정 때 조금이라도 그 학교에 신경 쓰이게 된다면 공인의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 유명한 영국의 군사전략가인 ‘아라비아의 로렌스’도 떠오른다. 1차 대전 때 그는 터키의 식민 지배 아래 허덕이던 아랍 사람들의 해방을 돕는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아랍 사람들과 함께 싸웠다. 마침내 터키는 패전했다.

그는 이제 아랍 사람들에게 독립이 왔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아라비아를 분할 통치하기로 이미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밀약이 돼 있었음을 확인하고는 자신의 순수성이 배반됐음을 깨달았다. “내가 이제까지 싸운 것이 결국 제국주의자들의 탐욕을 위해서였던가”라는 짙은 회의는 그에게 국왕이 훈위와 훈장을 주고자 했을 때 국왕 면전에서 거절하게 만들었다.

“나의 이제까지의 정치 역정이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서였지 이렇게 혼탁한 정치풍조의 조성에 일조하기 위해서였던가”를 한 번쯤 반성한다면, 감히 명박의 옷을 입을 수 있을까. 민주화 투쟁의 숭고한 기록에 조금이라도 흠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권력에 있을 때는 명박의 옷을 입지 않는 것은 물론 잠깐 걸쳐보지도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공직 사회에 밀턴과 로렌스는 없는가?

김학준〈본사 편집논설고문·인천대총장〉h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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