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로버트 파우저/세계화 거스르는 日의 오만

  • 입력 1999년 8월 17일 19시 19분


매년 8월 첫째주 토요일 일본 쓰시마(對馬)섬에서는 아리랑 축제가 열린다. 에도(江戶)시대 조선통신사를 위한 환영 행사를 재현한 것으로 지금은 한국 단체들도 참가하고 있다.

한일관계는 최근 몇년간 상당히 개선돼 에도시대 이후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이면에 일본의 ‘한국 경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미묘함과 속뜻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일본 문화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 경시태도는 극우단체를 제외하고는 표면화되는 일이 드물지만 일본사회 전반의 한국인 경시는 가히 무의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힘을 행사하는 상황에 처하면 한국인 경시태도는 금방 드러난다. 일본 공항의 출입국 심사과정이 좋은 예일 것 같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데도 일본어 소통이 안돼 입국이 거부된 한국인이 적지 않다는 보도도 있다.

존댓말을 써야 할 상황에서 한국인에게 반말을 쓰는 일본인을 자주 볼 수 있다. 일본어에도 존댓말과 반말이 있다. 사회생활에서는 존댓말을 쓰고 동료나 지인 사이에는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기도 한다. 모르는 사이엔 존댓말이 원칙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존댓말을 쓰지 않으면 분노 경멸 무례의 뜻이 내포돼 있다. 일본 출입국심사 당국의 관리들은 한국인에게 반말을 쓰면서도 일본인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필자도 일본을 드나들면서 한국관광객과 일본 유학 한국유학생들에게 반말을 일삼는 하위직 공무원을 많이 보았다.

아시아 금융위기, 중국의 등장, 세계 각지의 자유무역지대 증가 등으로 한일간에도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는 방안이 관심을 끌고 있다. 세계의 자유무역지대 역사를 보면 회원국들이 물자 서비스 사람의 이동을 제한하는 감정적 관료적 장벽만 없애면 제대로 작동된다. 자유무역지대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나라 크기나 발전 정도가 다른 회원국끼리 ‘대등관계’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일본 총리 자문기관인 경제심의회는 10개년 개발계획에서 ‘아시아 자유무역지대로 나가기 위해 먼저 한국과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좋은 아이디어일 수 있다. 유럽 북미 남미 동남아 등에 자유무역지대가 있고 더 작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가 세계 곳곳에 있다. 일단 자유무역지대가 성립되면 사회적 정치적 통합을 강화하는 공동 통화(通貨)를 채택해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시간 문제다. 결론적으로 동북아에서 일본인들의 ‘오만과 편견’ 때문에 이런 추세를 거스른다면 그 대가는 자명하다.

한국이 더 큰 아시아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위한 시험 케이스라면 일본은 한국인을 차별하는 감정적 관료적 장벽을 모두 없애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 30일 무비자관광 허용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제 공은 일본 쪽에 넘어가 있다.

일본이 한국, 나아가 다른 아시아국가들과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길 원한다면 다른 자유무역지대들이 보여준 것처럼 ‘대등’과 ‘개방’의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대등과 개방의 자세는 방문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절이며 이것이 바로 아리랑축제의 취지가 아닐까. 쓰시마섬이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일본의 다른 어떤 지역도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로버트 파우저〈일본 구마모토가쿠엔대학교수·언어학〉heungbo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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