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3金청산'의 소프트웨어는?

  • 입력 1999년 8월 10일 18시 46분


한나라당의 이회창(李會昌)총재가 9일 기자회견에서 ‘3김정치 청산’을 다짐했다. 이번에야말로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며 정치적 명운을 걸고 3김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3김정치’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지역할거 패거리정치, 보스1인지배의 권위주의 정치, 비민주적 정당운영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때문에 21세기를 앞두고 이런 ‘3김식’ 구태정치는 청산돼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이총재도 ‘3김정치 청산’을 시대적 사명으로 인식하고 이 역사적 투쟁에 모든 것을 걸고 앞장설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총재는 그 투쟁의 첫단계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 대해 ‘내각제 개헌유보와 관련해 국민에게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국민회의를 탈당할 것도 요구했다. 김종필(金鍾泌)총리에 대해서는 역시 내각제 위약과 관련해 총리직을 사퇴하라고 공세를 폈다.

그러나 이총재의 3김정치 청산이 결실을 보려면 그 ‘소프트웨어’가 충실해야 할 것이다. 과거 십수년 전부터 수많은 차세대를 겨냥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내용과 실천방안이 모호한 3김청산론이 제기되었으나 무위에 그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차별화된 대안’을 제시하고 스스로 정당의 민주화를 실천하는 등의 자체개혁 노력이 뒤따라야 할것이다.

이번에 이총재는 세 김씨를 싸잡아 겨냥하면서도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과의 관계설정에는 매우 애매한 태도였다. 김전대통령의 아들 현철씨 사면 문제에 관해서도 한나라당은 이도저도 아닌 양다리 걸치기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민회의나 자민련도 “풀어주어서는 안된다”는 식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판에 야당이 야당다운 자세는커녕 눈치보기, 부산경남의 지역정서 헤아리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3김의 시대가 길어진 것은 그 분들의 역량보다도 한국 정치의 유별난 지역주의가 그들을 떠받쳐 왔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익집단이 지역별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세 김씨가 각기 일정지역의 이익 구현자(具現者)처럼 자리매김하면서 정치생명이 길어진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3김청산은 반드시 지역주의 극복과 더불어 논의되지 않으면 공소한 논의에 그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총재의 주장에는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어떤 논리도, 구상도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의 소프트웨어 없는 말로만 외쳐온 청산론은 오히려 세 사람의 정치수명을 연장해온 측면도 없지않다. 이총재가 진정한 3김 청산을 겨냥한다면 자기혁신과 정치개혁을 위한 섬세한 설계와 충실한 소프트웨어를 내놓아야 할 때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