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191)

  • 입력 1999년 8월 10일 18시 46분


초인종을 누르니까 새 소리가 들리더니 어머니의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어요.

누구세요?

저예요.

문이 딸깍 열리고 현관에 불이 켜지면서 아줌마와 어머니가 거의 동시에 마당으로 나서는 게 보였죠.

어서 와라. 너 얼굴 잊어버리겠다.

은결이는요….

하는데 거실쪽에서 엄마 엄마 하는 고것의 목소리가 들려와요. 우리가 들어서니까 은결이는 입으로는 엄마를 찾으면서도 웬일인지 비척비척 뒷걸음질로 물러나면서 아줌마의 뒤로 숨는 거 있죠. 나는 또 나대로 어머니 앞에서 호들갑을 떨기도 그래서 내 성질대로 그냥 서서 한동안 바라보았어요.

은결아 일루 와!

내가 두 팔을 벌려 보였는데도 고것이 더욱 아줌마의 치마를 잡고 얼굴을 묻어버리는 거예요. 어머니가 곁에서 중얼거렸어요.

둘이 똑같다.

아줌마가 은결이를 덥석 안아다가 내 팔 사이에 넣어 주었고 나는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은결이는 그 무렵에 엄마는 물론이고 맘마, 찌찌, 빠이빠이, 이뻐, 미워 따위의 간단한 낱말들을 한마디씩 종알거렸는데 내가 입을 맞추자마자 고개를 돌려 뺨으로 내 입술을 뿌리치면서 이래요.

엄마 미워.

나는 한동안 은결이를 꼭 안고 서성였어요. 따뜻한 작은 가슴의 통통대는 박동이 느껴지면서 이것이 내 몸 안에 있을 적의 일들이 생각났어요. 어머니는 옛날부터 씩씩하신 분이라 창 밖을 내다보며 딴전을 피우다가 얼른 내 보따리를 가져다 풀고 굴비를 꺼내어 살피고 아이의 옷을 꺼내어 눈 앞에 펼쳐 보였습니다.

엄마가 우리 은결이 꼬까 사왔네요.

어머니가 손수 아이에게 옷을 갈아 입히고 나는 여러번 입을 맞추고 하면서 아이의 맺힌 마음을 풀어주려 했지요. 그러나 나는 그때 알았어요. 내가 이것을 내 품 속에서 키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은결이는 새 옷을 갈아입고 할머니와 내 앞에서 재롱을 피우더니 저녁 먹고 나서는 익숙한 제 아줌마에게 가버리고 어머니와 나는 둘이서 주방 식탁에 마주 앉았어요.

넌 밖이 더 편하니?

편할 건 없지만…공부를 해야 하니까.

차라리 살림집이나 아파트를 구하라는데도.

그림두 그려야지, 거기가 좋아요.

정희 온댔다.

나 전화 안했는데.

너 온다구 내가 연락했어.

하더니 어머니가 내 손을 끌어다가 들여다 보는 거예요.

여자 손이 이게 뭐냐?

그네는 내 손을 잡은 채로 한동안 보고 있다가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물어 왔어요.

그 사람은 언제…나온다는 얘기 없니?

몰라요. 편지 몇 번 했는데 아마 안들어갔나 봐요.

쟤 있는 것두…모르겠구나.

엄마, 인제 그만.

나는 어머니에게서 손을 빼내어 앞으로 쳐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내 얼굴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글 :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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