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日 政界의 우경화

  • 입력 1999년 8월 8일 18시 26분


6일 일본 정계의 두 실력자가 같은 주제에 대해 비슷한 발언을 했다. 현직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를 공식 참배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례적인 일이다.

모리 요시로(森喜朗)자민당 간사장. “나라를 위해 싸운 이를 모셔놓은 곳에 현직 총리가 공식참배를 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하다는 의견도 있다.”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관방장관. “총리를 비롯해 모든 국민이 진심으로 영령을 위로할 수 있도록 야스쿠니 신사를 다시 생각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접어 들었다.”

일본 총리가 8월 15일 ‘종전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총리가 마지막. 그후 한국과 중국 등 피해국가의 반발을 의식해 현직총리는 참배를 하지 않고 있다.

피해국가들이 반발한 이유는 신사에 A급전범의 위패가 있기 때문. 총리가 전범의 위패에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전쟁에 대해 일본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야스쿠니신사의 참배문제는 패전국 일본의 아킬레스건이자 양심의 척도로 받아들여져 왔다. 헌법개정 논의와 함께 마지막 남은 터부나 마찬가지였다.

일본 정부는 A급 전범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신사를 종교법인에서 특수법인으로 바꿔 ‘국립묘지’성격으로 운영하는 문제를 검토중이다.

노나카 장관은 “중국의 덩샤오핑도 A급전범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헌화할 수 있다고 생전에 말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요즘 일본 정계는 급격히 우경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제어하는 야당과 지식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말을 맞춘 듯한 두 정계 실력자의 발언으로 미뤄 볼 때 현직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당당하게 참배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심규선<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