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정규/수재고통 함께 나눌때

입력 1999-08-04 19:42수정 2009-09-2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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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경부선 열차에서 생긴 일.

삼등칸은 서울역에서 좌석이 다 찼다. 그는 대학생 차림의 젊은이 옆에 앉았다. 앞자리에는 학생과 일행인 듯한 처녀 둘이 앉아있었다. 뒤늦게 출구 쪽에서 한 환자가 들어왔다. 하도 여위어 흡사 골격 표본같이 뼈만 남은 젊은 여인이 친정어머니인 듯한 중년여인의 어깨에 실리다시피 다가왔다. 그와 남학생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고맙다는 인사는 친정어머니가 하고 환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누워버렸다. 처녀들이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는 한 덩어리로 끼어앉고 남학생만 서있게 됐다. 친정어머니는 딸에게 보따리를 베어주고 뻗은 다리의 치마를 여며주고는 그 발치께 서있었다.

▼눈시울 뜨거운 풍경

“그리루 앉으세요.” 우연히도 세사람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나왔다. 그제야 딸의 다리를 가리며 겨우 걸터앉았다.

그는 생각했다. ‘서울로 시집보낸 딸이 중병에 걸려 친정으로 죽으러 가는구나….’ 이윽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자가 갑자기 눈을 뜨고 통로까지 들어찬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엄니, 대전서 워떻게 차를 갈어탄대유?” 어머니의 대답도 듣기전에 환자는 힘없이 눈을 감아버렸다. 감은 눈에서 소리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허허, 아무리 무정한 남편이로되마지막길이나마동행했던들얼마나위로가됐을꼬?’ 그는 견디다못해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가시는데 그러십니까?”

“연산까지 가느만유.”

“그럼, 호남선으로 갈아타셔야겠습니다.”

“예.”

“내가 책임지고 갈아태워 드릴테니 걱정마십시오. 그럼 됐지요?” 환자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걱정말고 어서 누우시오.”

그제야 환자는 쓰러지듯 누웠다. 그는 그 여인에게서 이북에 두고 온 그의 딸을 보았다. 그의 딸이 멀리 시집을 가서 중병을 앓게 된 모습이 보였다. 남편이 딸을 버린 것이 보였다. 늙은 아내가 지금 이 여인의 친정어머니처럼 딸을 기차에 태워 집에 돌아가고 있다…. 그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참느라고 창밖 풍경을 내다보았다. 수원역에서 남녀 학생들과 몇 사람이 내렸다. 타는 사람이 더 많았다. 드디어 대전. 그가 일어섰다. 손가방을 부인에게 맡기고 환자에게 등을 돌려댔다.

“자 내게 업히시오.”

“….”

“어서 업혀요!”

“미안혀서 워떻게 업힌대유 아저씨….”

그는 잠깐 허리를 펴고 환자를 돌아다보았다. 그리고 차안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들을 만큼 쨍쨍 울리는 쇳소리 음성으로 “내 말소리로 알겠지만 나는 이북이 고향인 사람이오. 고향에 당신보다 더 나이 많은 딸이 있소. 그 딸이 시방 아파서 당신처럼 차에서 내릴 수 없다면 그곳 누군가가 나처럼 이렇게 업어서 내려줄 게 아니오? 내 비록 칠십 노인이지만 지금도 웬만한 젊은이하고 팔씨름해 져본 적 없소. 어서 염려말고 업혀요.” 그제야 환자는 그의 등에 업혔다. 환자가 업히자 승객으로 빽빽히 찬 통로가, 저 사람들을 어떻게 뚫고 나갈까 걱정했던 통로가 일시에 훤히 트여버렸다.

닷새간의 폭우와 태풍 올가는 산발하고 손톱을 세워 국토 전역을 무참히 할퀴고 지나갔다. 풍수해를 겪은 지역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지만, 그동안 숨죽였던 매미소리와 함께 피서를 떠나는 차량행렬은 길을 다시 메울 것이다. 오늘 아침 하늘은 쾌청,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 내가 먼저 나서자

벽돌공장 사장이셨던 요한 선생. 그는 평생 “우리회사 물건이 곧 광고”라며 쪽광고 한번 낸 적이 없었지만, 지금 그가살아계신다면여기저기벽돌과 쌀을 듬뿍듬뿍 실어보내고, 신문사에 들러 무명씨로 봉투 내놓고 말없이 돌아서겠지.

끝으로잘알려진우화하나.

어느 마을에 ‘모두’ ‘누군가’ ‘아무나’ ‘아무도’라는 이름의 네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그 마을에 큰일이 생겼다. 그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모두’가 동참해야 했지만 ‘모두’는 ‘누군가’가 그 일을 하겠지 생각했고, 그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도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 꼴을 보고 ‘누군가’가 몹시 화를 냈다. 왜냐하면 그 일은 ‘모두’가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나누고 부축하자. 우리는 해낼 수 있다. 내가 먼저 나서자.

강정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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