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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7월 18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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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칸막이 시절에 내가 좋아하던 놀이가 있었다. 화초 기르기와 개미 돌보기였다.
봄에서부터 여름까지 칸막이 안에는 시멘트 담의 그늘과 양지를 따라서 작은 풀꽃이며 잡초들이 쉴새없이 자라났다. 가장 흔한 것이 민들레나 씀바귀 그리고 제비꽃이었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예쁘게 꽃이 피어난 줄기에 물을 주었다. 다 먹고 버린 우유 갑에 물을 담아 가지고 나와 운동 공간의 칸막이까지 찾아와 준 여린 풀꽃들을 먹였다. 다른 잡풀들은 뭉툭하게 한줌이 될만하게 꺾어서 시멘트 담에다 글씨를 쓰는데 일단 푸른 풀물의 자취가 남아 있다가 하루만 지나면 빗물에도 씻기지 않고 하얗게 글의 자취를 남겼다. 시국사건으로 들어온 학생과 노동자들이 시멘트 담의 사방에 저희들의 구호라든가 투쟁목표를 적었고 공범들에게 메시지를 남겨 두기도 했다. 군사 파쇼를 타도하라! 노동자에게 권력을! 미제를 몰아내자! 민주주의 만세! 그래서 검열이 있게 되면 교도관들은 우선 시멘트 담을 씻어내고 각 칸막이 안의 잡초를 깨끗이 쓸어버린다. 그냥 손으로 꺾는게 아니라 잡역들을 시켜서 호미로 매어 버린다. 아아, 내가 소중하게 길렀던 꽃들도 뿌리까지 뽑혀서 말라붙어 있었다. 꽃은 너무 여려서 이미 흔적과 형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분노와 슬픔의 순간이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칸막이 안에는 여러 종족의 개미들이 살아간다. 가장 작고 몸집이 새까만 것들, 윗몸은 검고 아랫도리는 통통하고 붉은 것들, 그들보다 조금 크고 재빠른 것들, 아주 크지만 무리가 적은 왕개미들. 나는 그 중에서도 굴 파기를 잘하고 작업에 열광적인 작은 검정개미들을 사랑했다. 글쎄, 내가 그들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며 사귀게 된 것은 바깥에서 넘어 들어온 날벌레들 때문이다. 담 안으로 많은 날것들이 저도 모르게 날아 들어왔다가 개중에는 다시 담을 넘어가지 못하고 칸막이 안에서 맴돌다가 벽에 부딪히기를 반복하다 시들시들 죽는 벌레들이 있었다. 메뚜기나 방아깨비도 있고 풍뎅이 종류도 있고 때로는 무슨 영문인지 멀쩡한 잠자리도 있었다. 거닐다가 그런 벌레들을 보면 다른 수인들도 그렇다는데 제 신세가 생각나서 대개는 소중히 주워다가 담 밖으로 날려 보내준다. 걷기 운동을 하다가 죽은 메뚜기가 땅에서 슬슬 끌려가는 걸 보고 개미들을 알아보게 되었다. 먹이를 발견하고 주위를 정찰한 다음 부지런히 굴로 돌아가 동료를 데리고 나오거나, 어김없이 먹이가 있는 장소로 되돌아 가는 것도 그렇고 먹이의 주위에 자발적으로 요소마다 절묘하게 배치를 붙는 것도 재미 있었다. 큰 먹이가 있으면 일제히 몰려나와 소굴로부터 목표 지점까지 긴 줄을 이루어 먹이를 나르는 것이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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