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9년 6월 30일 19시 5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상대방 것이 제아무리 싸고 좋다 해도 아예 수입하지 않거나 제한된 수량 이상은 수입해 주지 않았고 그것도 사전에 그 대상을 정해 놓았으니 이 얼마나 불공정한 조치인가.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의 수입규제 금지는 물론 무차별 원칙에 위배돼 일찍부터 다자통상교섭의 장에서 수모를 겪었다. 일본의 불공정 무역사례 조사에서는 단골손님이었다. 한국 통상관료들은 군색하게 유치산업보호론을 들이대며 제조현장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피해가 적은 것부터 단계적으로 푸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야말로 관민협조형 산업통상정책의 상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한 과보호는 당연히 불투명성 비한시성(非限時性) 불공정성 비효율성을 잉태했다. 이런 가운데 수출에 필요한 주요 핵심부품은 예외적으로 수입을 허용하고 제삼국을 경유한 일본제품의 수입이 늘어나면서 이 제도의 시장보호 효과는 반감됐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동시에 기존 통상산업정책의 기본프레임을 자유공정 체제로 전환하면서 이 제도의 단계적 폐지를 예시했다. 이후 3,4년 동안 일제의 완전 수입개방에 철저하게 대비한 업종보다는 안일하게 동종 국내업계끼리 과당경쟁이나 일삼은 업종이 많았다. 대형 소비재 조립업체는 오히려 보호 속에 살아남고 기계 전자부품과 소재관련 중소하청업체는 업계에서 사라졌다.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조립업체도 존립이 위태롭다.
당분간 일본이 한국시장 공략에 앞서 투자나 기술이전보다는 수출량을 조절하면서 한국형 신제품을 개발해 브랜드이미지 구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유통업체들은 앞다투어 일본의 디지털가전 양판점과 중형자동차 수입대리점 설립을 서둘러 자동차와 고급 전자제품의 수입이 급증할 우려가 크다. 다행히 국내경기부진, 까다로운 형식승인, 상이한 제품방식, 현지법인설립 애로, 일부 가냘픈 국내 대체재와 독과점 조직의 존재 등이 일본자동차부품 공작기계 광폭컬러TV 자동차 등의 급속한 진출을 막고 있다.
그러나 최근 1·4분기(1∼3월) 다변화해제품목, 특히 소비재의 수입비중이 작년 동기에 비해 격증했음을 볼 때 1년 후의 상황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자본재와 중간재 수입은 일본의 기술이전기피, 핵심부품기술의 대일의존, 설비투자회복과 생산성 향상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고가의 디지털 가전제품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건전한 소비활동이 아니다.
중간재 자본재도 대일 수입을 사전규제하기보다 일찌감치 해제했어야 했다. 대신 한국 조립업체와 일본의 부품업체, 일본의 조립업체와 한국 부품업체가 제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더라면 오늘날 과잉설비로 허덕이지 않고 한국 부품업체의 시작품(試作品) 설계능력이 향상돼 제조업 생산성이 급속히 향상됐을 것이다.
한국에는 일본 현장에나 맞는 고급기자재가 들어와 놀고 있는 곳이 아직도 많다. 이용도가 낮은 고급 일제설비 때문에 자본계수만 올라가고 효율은 떨어진다. 오랜 규제가 창의적인 민간활동을 저해해 이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강력한 규제수단을 스스로 내던진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자금지원이 아니다. 양국간의 잔존 투자장벽을 스스로 허물고 업종별로 양국기업들의 개방적인 글로벌제휴가 가능한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이다.
최근 검토하기 시작한 한일투자, 자유무역협정의 기본시각도 양국 기업 중에서 몇 개의 세계초일류기업을 계획적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일본이 대한(對韓) 투자를 기피하는 가장 큰 요인이 한국 정책의 일관성결여와 노사관계 불안이다. 빗장이 풀린 일본제품에 대항하려면 노사가 불신의 벽을 허물고 제조업현장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 주변국은 우리를 시시각각으로 조여오고 있지 않은가. 주저할 때가 아니다.
김도형(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