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무조사의 앞과 뒤

  • 입력 1999년 6월 30일 18시 31분


한진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와 보광 및 통일그룹 등에 대한 전격적인 세무조사의 배경과 파장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세청은 이들 그룹의 탈세혐의를 잡고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조사대상과 시기, 조사방법 투입인력 등으로 미루어 갖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세무조사는 한진그룹 등 3개 그룹 외에도 20여개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한꺼번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국세청은 한진그룹의 경우 조중훈(趙重勳)전회장 일가의 사전 상속과 관련된 주식 변칙거래, 그룹자금의 탈법적인 유출 등에 조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보광그룹은 삼성그룹과의 분리과정에서 특수관계인들간의 편법증여가 있었는지를 가려낼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탈세 혐의가 있다면 엄정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재벌그룹의 법인세 및 상속 증여세 탈루, 탈법적인 외화유출, 비자금 조성 등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중앙일보사의 대주주인 보광그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수천억원을 지원받았다는 편법증여 의혹도 철저히 가려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국세청의 대대적인 세무조사는 단순히 탈세혐의만을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한진그룹에는 과거 특별세무조사 때의 2배가 훨씬 넘는 2백40여명의 조사인력이 투입되었다. 조사시기도 재벌개혁의 부진과 족벌경영의 폐해가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시점이다. 한진그룹 주력 계열사를 모두 조사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눈길을 끈다.

재계가 아연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지지부진한 재벌개혁을 채찍질하고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고강도 압박작전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심지어 야권에서는 총체적 난국돌파를 위한 정치적 목적이나 기업과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또다른 포석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까지 보내고 있다.

세무조사는 기업에 대한 공권력 행사의 마지막 단계다. 재벌구조개혁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경제논리가 아닌 강압적 수단을 동원해 이끌어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동안의 특별세무조사는 대부분 정치적 고려에 따라 이루어졌다. 권위주의 정권일수록 세무조사를 정치적 목적에 곧잘 이용했다. 그리고 그 파장과 악영향은 재계 전체로 번졌다. 이번 세무조사가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없다. 그러나 이런저런 정황으로 보아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는 만큼 당국은 세무조사를 하면서 이 점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무조사가 가까스로 회복국면에 들어선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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