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골프는 삶의 가르침」

  • 입력 1999년 6월 21일 19시 32분


골프는 삶의 가르침(Golf, lessons in life). 경기도 용인의 L골프장 한구석에 그런 글이 붙어 있다. 박세리가 미국 무대 숍라이트 클래식에서 11개월 만에 1승을 올린 어제 US오픈에서는 페인 스튜어트(42)가 우승했다. 그는 15세 때 샷이 빗나가자 골프채를 부러뜨린 일이 있었다. 그것을 본 그의 아버지는 벌을 주었다. 아버지는 55년 US오픈에 출전한 적이 있는 솜씨있는 골퍼였다. “한달간은 골프 금지다. 그리고 샤프트는 네가 돈을 벌어 끼워라.”

▽아들은 정원의 잔디를 깎고 집안 페인트 칠을 하면서 번 돈으로 채를 수리했다. 아들은 그 아버지가 삶과 골프를 깨우치게 해주었다고 회고한다. 그가 4대 메이저 타이틀인 US오픈 2승 PGA선수권 1승을 포함해 10승을 거두게 한 정신적 기둥이 아버지라는 얘기다. 특히 퇴행성 허리디스크라는, 프로골퍼로는 치명적인 약점을 이기고 세계 정상을 밟도록 해 준….

▽골프는 심판이 없는 특이한 경기다. 경기자 스스로 룰을 지키고 기록하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래서 속임수가 금기시된다. 또 ‘자연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같은 경기장이라도 날마다 바람의 세기와방향,그린의습도가다르다.같은샷이라도 공이 꼭같은 자리에 떨어지는 일은 없다.비탈이나깊은풀,모래위같은 항상 다른 조건에서 경기해야 한다. 그만큼 겸허해져야 한다.

▽박세리와 함께 미국 프로무대에서 뛰는 박지은도 다른 시합에서 첫 승을 거두었다. 일본 프로에서 김종덕도 3승째를 기록했다. 자기를 이기고 자연과 조화하는 데 성공한 한국인들의 인간승리다. 비록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지만 국내 팬도, 골퍼도 꾸준히 늘고 있다. 세계적인 프로를 배출하는만큼 한국의 골프 수준과 매너도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필드에서 다투고 샤워장에서 너무 떠드는 주말골퍼가 적지 않다.

〈김충식 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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