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YS와 페인트세례

  • 입력 1999년 6월 4일 19시 17분


그리스도 교회에서 행하는 세례의식은 정화(淨化)를 상징한다. 사람을 거듭나게 한다는 의미에서 세례는 거의 물을 사용한다. 몸을 물에 완전히 잠기게 하거나 일부만 넣기도 하고 머리에 물을 붓거나 적시기도 한다. 구약성서에 배경을 둔 세례의 신학적 의미를 처음으로 명백히 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 세례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세례는 가끔 교회 밖에서 뜻이 엉뚱하게 바뀐다. 정치인 등에게 망신을 주려고 달걀을 던지면 ‘달걀세례’, 밀가루를 덮어씌우면 ‘밀가루세례’가 된다. 출소자에게 가족 친지들이 두부를 먹이는 ‘두부세례’도 있다. 지난해 11월 광주공항에서 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이 받은 달걀세례, 91년 한국외국어대에서 정원식(鄭元植) 전국무총리가 당한 밀가루세례가 기억에 생생하다. 엊그제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이 김포공항에서 받은 ‘페인트세례’는 색깔부터 자극적이다.

▽교회세례가 신학적 의미를 갖고 있듯이 정치인 등에게 세례를 퍼부운 사람들도 그럴듯한 이유를 꼭 내세운다. 김전대통령에게 붉은색 페인트가 든 달걀을 던진 재미교포는 현장에서 “IMF사태로 나라를 망친 것을 응징한 것”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최근 김전대통령의사려깊지못한발언들을 들어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표현방식이다. 아무리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 행동이더라도 폭력적 방법은정당화될수없다.

▽페인트였기 망정이지 만약 인체에 치명적인 약품같은 것이었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섬뜩한 일이다. 그래서 경호책임을 따져야 한다는 소리도 있다. 여하튼 이런 식의 ‘응징’은 기껏해야 소영웅주의(小英雄主義)에 불과하다.

한편으론 일본에까지 가서 국내 정치문제에 대해 연일 극단적 단어로 목소리를 높이는 전직 대통령의 모양새도 보기에 민망하다.

〈육정수 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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