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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3일 1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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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맨해튼에 위치한 이 38층짜리 사무실 빌딩은 1958년에 루드비히 마이스 반 데르 로헤가 설계한 것으로 유리로 지어진 현대적 마천루 중에서도 가장 세련된 모습을 자랑한다.
건물 앞에는 분홍색 화강암으로 된 널찍한 광장이 있고, 건물의 강철 뼈대를 감싸고 있는 것은 분홍색과 회색의 유리이다. 청동으로 된 I자형 들보와 창살 가로대가 유리로 된 겉면에 변화를 준다.
마이스가 유리로 된 고층 건물을 실험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초였다. 철학자 오스왈드 스펭글러의 추종자였던 그는 20세기에 서구 문명이 붕괴될 것이라는 스펭글러의 비관적인 견해에 공감하고 있었다.
이같은 비관적 견해에 대한 건축가적 응답으로 그가 내놓은 것이 세련되고 엄숙한 건축미학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설계한 엄숙한 건물을 짓는 데 이탈리아산 대리석, 청동, 크롬으로 감싼 강철, 두꺼운 색유리 등 화려한 재료를 흔히 사용했다.
시그램 빌딩에서는 위로 약간 올라와 있는 광장의 균형미, 건물의 삼분할, 기둥의 규칙적인 배치 등 고전적인 요소들이 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반면 고딕적인 요소들은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다. 건물 외벽의 가벼움과 투명함, 유리로 된 겉면에 부착된 1자형 들보가 강조하는 수직적 느낌 등이 고딕적인 느낌을 주는 요소이다.
사실 고딕 양식의 성당들은 현대의 유리로 된 건축물의 전주곡이었다. 마이스는 시그램 빌딩의 선배격인 1921년의 프리드리히스트라세 사무실 건물 설계에서 건물의 한쪽 모서리를 날카로운 삼각형으로 디자인함으로써 첨탑같은 느낌을 주도록 했다.
오늘날 우리는 고딕 양식과 고전 양식이 단순한 건축 양식 이상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양식은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상징한다. 고전적 양식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분석적이다. 반면 고딕 양식은 직관적이고 탐험적이며 통합적이다. 둘 중 하나를 희생시키고 나머니 하나만 끌어안아서는 얻을 것이 별로 없다.
문명의 임무는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한데 끌어안는 것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흔히 갈등과 분쟁을 겪어야 하는데 마이스는 시그램 빌딩에서 현대의 누구도 능가하지 못한 고요함으로 이를 달성했다.
▽필자:허버트 머스챔프〓뉴욕타임스 건축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