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걸쳐보기만 했다?

  • 입력 1999년 5월 31일 23시 04분


이러고도 검찰이 엄정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김태정(金泰政)법무장관의 부인 연정희(延貞姬)씨가 신동아그룹 최순영(崔淳永)회장의 부인 이형자(李馨子)씨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의 태도에 석연치 않은 점이 여러군데에서 발견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고급 옷을 미끼로 한 재벌과 장관급 부인들간의 로비의혹에 있다. 따라서 고소인과 피고소인이 적당히 화해하고 끝내도록 중간역할을 하는 것이 검찰의 임무는 아니다.

검찰이 대통령 지시로 연씨의 고소형식을 빌려 이왕 수사를 시작했다면 국민의 의혹해소 차원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난 며칠간의 수사진행 상황을 보면 수사를 하는건지 특정인 감싸주기를 하는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면이 보인다. 검찰은 30일밤 조사를 받고 있던 이씨로 하여금 연씨에게 전화를 걸도록 주선했다고 한다. 이 통화에서 “두사람의 오해가 일부 풀렸다”고 검찰간부는 강조했다. 이 통화주선은 31일 대질신문을 연씨에게 유리하도록 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는 의혹을 살만하다. 이런 식으로 두사람의 오해만 풀어주려 한다면 로비의혹은 제대로 밝혀질 리 없다.

연씨가 1월초 기도원에 갈 때 문제의 밍크코트를 입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검찰은 연씨 입장을 해명하기에 급급하다. 검찰은 함께 갔던 여전도사의 말이 “팔에 걸치고만 있었다”는 연씨 주장과 일치한다고 적극 해명했다. 그렇다면 당시 코트를 입고 있는 것을 봤다는 또 다른 증인의 사직동팀 조사때 진술과 다르다. 따라서 검찰의 설명대로 연씨의 주장이 옳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입원중인 전 통일부장관 부인 배정숙(裵貞淑)씨와 연씨를 소환할 때 보인 차별대우도 검찰로서 떳떳하지 못하다. 배씨의 경우 기자들에게 사전예고한 뒤 서울지검 청사로 소환, 사진기자들에게 촬영기회를 제공한 반면 연씨는 극도의 보안속에 다른 검찰청사로 데려가 조사했다. 게다가 검찰주변에서는 ‘빅딜설’까지 나도는 형편이다. 고소인과 피고소인은 유야무야되는 반면 참고인인 배씨와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鄭日順)씨만 사법처리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은 “수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결국 여론에 밀리고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져 시작된 수사여서 처음부터 검찰수사를 보는 일반의 시각은 회의적이었다. 검찰이 과연 이런 의심을 말끔히 씻어 줄 엄정한 수사를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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