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관공서마다 제2건국위 깃발?

  • 입력 1999년 5월 4일 19시 33분


정부 청사에 제2건국위 현판이 내걸리고 이 운동을 상징하는 깃발(엠블럼)이 올라간데 이어 행정자치부의 제2건국운동 추진국은 지난달 14일 각 시도에 이같은 현판과 깃발을 달도록 권장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각 시도는 예산형편과 현지사정 등 여건이 허용되는 범위내에서 자율적으로 현판과 깃발을 달라는 내용이다. 깃발의 경우 게양대에 올리거나 별도로 돈이 든다면 청사주변 울타리에 걸어도 된다는 ‘배려’가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행정자치부가 낸 이 ‘권장’공문을 받은 경북도청의 경우 한술 더 떠 일선 행정기관에 주문했다. 경북도청은 “깃발게양 및 현판설치 현황을 4월30일까지 상급기관에 제출하라”고 해 사실상의 ‘강제성’을 부여한 것이다. 위에서 미풍(微風)이라도 불면 아래서는 널뛰기로 돌아가는 행정 메커니즘의 일단을 보는 것만 같다. 이같은 도청의 ‘강력한’ 주문은 시군읍면에서는 일대 강풍(强風)으로 바뀌어 깃발을 걸기 위해 게양대를 새로 만들거나 게양대 보수작업을 추진하는 과잉반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는 제2건국 운동이 순수한 민간운동에 그치지 않고 정치성을 띠거나 그로 인한 폐해가 없어야 한다고 누차 강조해왔다. 새 정부와 제2건국운동 지휘부는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이’ 이 운동을 펼친다고 다짐해왔지만 행정자치부가 주도한다는 성격때문에 일선에서는 당연히 관변(官邊)운동으로 인식되고, 그에 따른 지역단위의 조직 구성과 관련해 여러 갈래의 말을 낳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어 야당 등으로부터 거센 비판과 비난이 있어오던 참이었다.

각 행정단위마다 깃발을 내걸게 하는 발상은 구시대적이다. 이 시대, 국민의 의식수준이나 행동패턴은 관주도의 무슨 정신적 계도 계몽운동으로 일거에 바뀌거나 개혁될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도 잘 먹혀들지 않는 운동의 확산을 기하기 위해 상징깃발을 내걸어서라도 바람을 유도하는 것은 행정적 도상(圖上)처방일 뿐이다. 행정기관 상하간에는 그럴듯한 운동 확산의 증빙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정작 운동이 겨냥하는 국민의 의식과 자세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이번 일부 지역에서 보듯이 권장공문도 일선 행정기관에 가면 강제 공문이 돼버리고 마는 데 관주도 운동의 함정과 위험성이 있다. 행정적으로 지시와 하달에 익숙한 아래 기관이 한술 더 떠 실천과 성과의 가시적 증빙을 내보이긴 하겠지만, 그 깃발과 현판 현수막 등이 나붙는다고 해서, 국민의 무관심이 비상한 열기로 뒤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불요(不要)한 일에 행정력을 낭비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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