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작은 정부는 없다?

  • 입력 1999년 4월 5일 19시 59분


정부는 ‘DJ노믹스’ 제1장의 실패를 선언할 것인지, 그 1장 내용을 수정할 것인지, 아니면 힘겹지만 초심(初心)으로 돌아갈 것인지, 갈림길에 섰다. 김대중(金大中·DJ)정부는 작년 9월 ‘국민과 함께 내일을 연다:DJ노믹스―국민의 정부 경제청사진’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 본론이 ‘경제구조의 전면적 개혁’이고 그 1장이 ‘작지만 봉사하는 효율적인 정부’다.

이 1장은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은 정부부문에서 시작돼야 한다. 정부부문부터 개혁하지 않고는 어떠한 개혁도 성공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도, 시장경제도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새로운 정부를 창조한다는 목표 아래 민간부문의 구조조정을 선도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뼈를 깎는 각오로 혁신을 추진할 것이라는 다짐이 이어진다. 그 구체적 약속의 하나가 ‘행정수요와 무관하게 비대해진 정부부문의 몸집 줄이기’다.

그런데 요즈음 정부 각 부처가 직제개편을 둘러싸고 드러내는 행태는 DJ노믹스 경제개혁 제1장을 비웃는다. 정부는 지난달 부처 통폐합 등 이른바 하드웨어 측면의 정부조직개편에 실패한 뒤 ‘소프트웨어 개혁’이라며 각 부처 기능조정을 위한 직제개편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어느 부처도 경영진단 전문가팀이 제시한 조직축소방안을 수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나없이 조직확대에 열을 올린다.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등이 저마다 국실 신설안을 내놓았다. 정부개혁 주무부처인 기획예산위원회조차도 국 신설을 꾀한다. 해양수산부는 한일어업협상 실패의 원인이 직제 때문이라는 듯이 국제협력관실 강화를 들고 나온다.

지난달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경영진단팀의 제안이 깡그리 무시됐을 뿐만 아니라 거꾸로 공보처 부활이 추진되는 것과 꼭 닮은 양상이다. 각 부처는 또 정원사수(定員死守)의 결의를 다지며 정치권 등에 로비 총력전을 펴고 있다. 마음이 잿밥에 가 있다보니 부분적 행정마비까지 빚어진다. DJ노믹스에서 강조한 ‘서비스하는 행정’이 무색하다.

결국 기획예산위는 조직축소에 대한 각 부처 반발을 감안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공식적 직제개편 논의를 유보하기로 했다. ‘작은 정부’라고 해서 모든 부처의 축소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제 살은 조금도 깎지 않겠다는 각 부처의 말을 다 들어주려면 뭣 때문에 46억원이나 써가며 경영진단을 했는가. DJ노믹스 경제개혁 제1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관료제의 타성으로 인해 부처의 자발적 개혁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통령의 확고한 철학과 강력한 의지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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