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효석/정보산업 무너뜨리는 不法복제

  • 입력 1999년 4월 1일 19시 51분


가장 널리 이용되는 소프트웨어 ‘글’을 개발한 한글과 컴퓨터사가 지난 해 경영위기를 맞았을 때 정품을 써야한다는 자성론이 일었다. ‘국역 조선왕조실록’을 CD로 만들었던 회사도 지난 해 문을 닫고 말았다.

학계와 문화계의 대단한 환영 속에 시장에 나왔지만 정품은 고작 2백50세트밖에 팔지 못해 제작비의 4분의 1도 건지지 못했다. 5,6년 전 게임소프트웨어 시장에 앞다투어 참여했던 삼성 대우 LG 등 대기업들이 한꺼번에 손을 뗀 것도 복잡한 유통문제와 함께 불법복제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지식산의 꽃 SW

세계경제는 빠르게 지식기반사회로 전환하고 있다. 지식기반사회란 지식과 정보가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회를 일컫는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맡았던 자동차 조선 철강과 같은 6대 기간산업은 세계시장에서 공급과잉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기업의 경쟁력도 한계를 드러내 이제는 새로운 엔진으로 바꿔 달아야 할 시점에 와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지식기반산업의 꽃이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부가가치가 높으며 한국처럼 자원이 부족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나라에서 가장 적합한 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에서의 한국 소프트웨어 제품의 점유율은 1%도 안 된다. 보잘것없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소프트웨어산업의 발전은 정부가 나서서 자금을 지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교육문제에서부터 시작해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다양한 정책대안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지식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이다.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발전은 사용자들의 대가지불에 대한 인식확산과 정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을 많이 들여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도 출시되기가 무섭게 불티나게 복제돼 나가는 현실을 보면서 어느 누가 여기에 돈과 정열을 쏟겠는가? 불법복제는 단순한 절도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보산업 자체를 무너뜨리는 파괴행위다.

미국 관계기관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은 97년말 현재 약 67%. 매년 점차 감소하고 있긴 하나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높다. 일반 수요자의 단순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행위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 연간 7천3백억원이란 피해를 주어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발전을 근본적으로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정품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수록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는 투자 의욕을 잃어버리게 된다.

한국의 불법복제율을 미국 수준으로 낮춘다면 최소 1만6천여개의 일자리와 3천6백억원의 세금 수입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 정품 사용자에 혜택을

최근 감사원이 한국소프트웨어산업연합과 공동으로 조사해 발표한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의 소프트웨어 사용실태 조사 결과는 더욱 놀랍다. 정부부처 중 단 두 개의 부처만이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91%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을 보이는 부처도 있었다. 이번에 우선적인 단속 대상을 정부 공공기관 기업으로 정한 것은 옳은 결정이다.

검찰의 단속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프로그램의 가격을 보다 현실화해 적은 비용으로도 필요한 프로그램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개인들이 정품사용의 인센티브를 가질 수 있도록 정품사용자에 대한 여러 가지 서비스를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는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적재산보호와 관련한 많은 이슈 중 하나이다. 지식사회에서 요구되는 지식의 공유와 확산이라는 과제는 지적재산권의 무조건적 강화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는 다단계를 거친 누적적 과정을 통해 개발되는 경우가 많다. 개발자간의 코드 공유를 통해 개발이 촉진될 수도 있고 기존의 소프트웨어와 코드를 사용하여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한 회사의 독점적 소유권으로 인해 생산자간의 경쟁이 저해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의 경우 지적재산권의 과보호와 지나친 상업화가 오히려 지식의 활용과 확산의 장애가 되거나 자유로운 개발을 통한 경쟁을 저해하는 독점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김효석<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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