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굴욕외교에 제살 베어먹기

  • 입력 1999년 3월 14일 19시 33분


해양수산부가 한일(韓日)어업 실무협상 때 누락시킨 쌍끌이조업을 되살려내기 위해 일본과 재협상하고 있으나 별 소득이 없어 보인다. 아직 양국 차관보 협상이 진행중이고 마지막으로 장관회담이 예정돼 있긴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해진 바로는 지난번 한국이 배정받은 총어획량 14만9천t 중에서 2천t을 쌍끌이조업 몫으로 할당한다는 것이다. 총어획량은 늘어나지 않고 조업항목만 조정한 것이다. 온갖 굴욕을 무릅쓰고 나선 재협상 결과가 이 정도라면 제살 베어먹기가 아닌가.

이번 재협상 때 어민들이 정부에 제시한 쌍끌이 어선과 어획고는 연간 2백20척에 6천5백t이다. 우리 정부는 이를 토대로 일본측과 협상을 했다. 당연히 들어갔어야 할 쌍끌이조업이 빠져서 추가하는 것이니 만큼 그 업종의 어획량이 새로이 보태져야 한다는 논리는 누가 보아도 정당하다.

그러나 일본측은 이미 정한 큰 틀은 흔들지 말아야 한다며 총어획량의 변경에 반대한다고 한다. 우리가 총어획량 추가를 강하게 요구할 경우 일본도 한국 경제수역에서 그 만큼 총어획량을 늘려야 한다고 나올 게 뻔하다. 총어획량을 이렇게 상호교환식으로 늘린다면 재협상이 잘된 결과라고 볼 수 없다. 예상되는 일본측 주장에 맞설 대응논리를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일본측이 6천5백t의 쌍끌이조업 어획량을 인정하지 않고 2천t만 우리의 기존 총어획량 테두리내에 포함시켜 허용한다면 그 나머지 4천5백t 중 일부라도 총어획량 추가분으로 새로이 얻어내는 차선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국익을 다투는 정부간 협상이 냉엄한 것은 당연하다. 우리 정부 당국자가 실수로 빠뜨렸다고 해서 일본측이 순순히 응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는 치밀한 전략과 대응논리로 상대방을 설파하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당초의 실무협상에서 어업현황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해양수산부가 이번에도 만반의 준비를 갖춰 재협상에 임했는지 의문이다. 정부 당국의 무능때문에 어민들이 생계위협을 받는다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재협상을 위해 김선길(金善吉)해양수산부 장관은 11일 도쿄(東京)로 건너갔으나 12일 오후까지도 일본 농림수산상과 만날 일정이 잡히지 않은 채 마냥 기다렸다. 일본 농림수산상의 의회참석 일정 때문이라지만 김장관의 그런 모습은 우리에게 굴욕감을 주었다. 저자세 외교로 국민감정이 우울해지고 국가위신이 손상된 것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정부는 실리와 명분을 모두 잃은 이번 재협상 전후의 실정(失政)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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