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농협개혁 이번엔 제대로…

  • 입력 1999년 3월 3일 19시 21분


농협에 3월은 잔인한 달이다.

94년 3월4일 자정무렵 당시 한호선(韓灝鮮)농협회장이 대검 청사에 전격 소환됐다. 검찰은 바로 ‘농협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웠고 ‘농협―구조적 비리 수술대에 오르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수사는 같은 달 19일 한회장을 횡령 등 개인비리 혐의로 기소하는 것으로 끝났다. 농협의 대출 유통 등 구조적 비리에 대한 수술은 공염불로 끝났다. 5일후인 24일 농협의 새회장 선거에서 유력한 후보였던 한회장이 사퇴하고 원철희(元喆喜)이사가 당선돼 ‘사람’만 바뀌었다.

79년 3월에도 농협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있었다. 검찰은 사상 최대의 인력을 투입해 대출과 인사비리 등을 파헤치며 농협중앙회 이사 등 36명을 구속했다.

99년 3월 검찰은 세번째로 농협에 대한 전면 수사에 착수했다.

농협에 대한 ‘전면수사’가 반복되는 현실은 그동안의 수사가 성공하지 못했음을 입증한다. 구조적 비리도 그대로 남았고 제도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다.

검사장 출신의 원로 변호사는 수사의 ‘정치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94년 수사의 밑바탕에는 ‘자기 사람’으로 농협의 구조를 바꾸려는 YS정부의 의도가 있었고 79년 수사도 ‘군기잡기’ 차원에서 이뤄져 농협의 진정한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부 검사들은 현재 진행되는 농수축협 수사에 대해서도 정치성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검찰수사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농수축협은 농어민의 생계와 직결되는 업무를 맡고 있고 이들 단체의 비리는 그대로 농어민의 고통으로 전가되기 때문이다. 동기나 출발이야 어쨌든 검찰이 이번에는 국민의 염원과 기대를 저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이수형 <사회부>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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