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국경있는 사랑

  • 입력 1999년 2월 25일 19시 24분


한국에 유학온 중국 공산당 간부집안의 딸과 결혼해 실직한 국가정보원(전안기부) 직원의 사연은 ‘애달픈 사랑’에 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결혼불가 명령을 어긴 그는 97년8월 사직서를 쓰고 나간후 강요된 사직이라며 소송을 냈으나 최근 대법원에서 패소판결을 받았다. 금지된 사랑의 효시격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관객은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그런 작품을 더 좋아한다. ‘비극적 쾌락’이 더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다고 한다.

▽60년대 히트했던 영화 ‘프로펫쇼날’은 금지됐다기보다는 ‘의외의 사랑’이 소재였다. 가무잡잡한 글래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명사의 딸 역을 맡아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녀를 납치해간 산적이 성격파 잭 파란스였다. 명사는 딸을 찾기 위해 버트 랭커스터 등 총잡이들을 고용한다. 그러나 랭커스터가 총 싸움 끝에 찾아 낸 명사의 딸은 산적과 껴안고 떨어질 줄 모른다.

▽‘금지된 사랑’은 율법이 엄격한 사회에 많게 마련이다. 지난달 파키스탄 상류층 정치인의 딸과 천민 청년 사이의 러브 스토리가 외신을 탔다. 두 연인은 계급의 벽을 넘어 몰래 결혼식까지 올린 뒤 가족과 고향을 버리고 도주하다가 붙잡혔다. 이들은 곡절 끝에 출국이 허용돼 뉴욕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란 법원은 작년 2월 독일 무역상과 사랑에 빠진 이란 의과대학 여대생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슬픈 사랑 이야기에서는 대개 사회제도가 억압자 역을 한다. 국가정보기관 요원의 국제결혼 금지는 그들이 국익의 선봉장이기 때문이다. 96년 6월 미 국무부는 모스크바 주재원들에게 러시아인과의 ‘달콤한 관계’규제령을 내렸다. 냉전시절 구소련 정보기관의 위협때문에 규제했던 것을 다시 끌어낸 것이다. 정보활동은 총성없는 전쟁에 비유된다. 정보요원의 사랑에 국경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도 그래서일 것이다.

김재홍 <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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