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김남주시인 아내 박광숙씨 산문집 「빈들에…」

  • 입력 1999년 2월 2일 19시 46분


김남주 시인의 아내 박광숙씨(49)는 강화도에 산다. 그는 이제 겨우 다섯해 수확을 본 신출나기 농부다. 그가 지금 갈고 있는 땅은 그들 부부와 외아들 토일이 나눠가졌던 ‘비밀의 장소’. 처음 이땅을 발견했을 때 그의 소망은 ‘집옆 텃밭에 당신을 묻고… 나는 뒷밭에 떨어지는 상수리 열매를 주우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남편은 멀리 광주에 묻혔다.

김시인이 세상을 떠난 뒤 어린 아들과 서울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박씨는 쥐똥나무와 백일홍 옥수수 고추 상추를 심었다. 남편이 없는 빈땅에서도 푸르게 자라나던 생명들. 그가 아들 토일과 가까운 벗들에게 쓴 편지를 묶은 산문집 ‘빈들에 나무를 심다’는 그 나무와 채소들처럼 상실을 딛고 새롭게 자라나는 희망을 얘기한 것이다. 박씨는 자기밭에서 키운 고추와 상추를 나눠먹듯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눈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를 구성지게 부르며 땅을 갈던 남편의 모습이 선연한 땅. 그러나 박씨는 이제 마냥 슬퍼하지 않는다. 꽁꽁 언 겨울땅을 보면서도 아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은가.

‘토일아, 엄마는 가을이 되고 겨울이 오면 여름에 무성하던 파란 싹이나 잎사귀들은 모두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가만히 보렴!… 눈밭속에서도 냉이는 뿌리에 속살을 살찌우며 자라나고 있다는 걸, 엄마는 그새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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