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반병희/제일銀 매각 ‘한건주의’

  • 입력 1998년 12월 31일 18시 06분


제일은행이 새해를 불과 10여시간 남겨놓고 미국계 투자금융기관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이로써 정부는 ‘연내 매각하겠다’는 약속을 국내외에 지킨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제일은행 매각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벌여온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해외신인도를 높이는데 크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매각추진 과정에서 정부가 드러낸 협상 전략과 태도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스스로 매각 시한(협상 시한)을 못박는 어리석음이 컸다.

작년 가을 정부와 IMF는 제일 서울은행 매각을 새해 1월말까지 마무리하기로 시한을 연장했다. 이에 따라 시간을 상당히 벌었으며 그 사이 국내외 경제환경이 다소 호전돼 이들 은행 매각조건을 우리측에 유리하게 바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감독위원회 등 관계당국은 “연말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며 제 발목을 잡았다.

결국 우리측 협상 대표들은 시간에 쫓기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협상 상대측에 유리한 고지를 내주게 됐다.

이 바람에 제일은행의 자산중 초우량예금과 초우량기업에 대한 여신만을 인수측에 넘겨주고 인원정리에 필요한 퇴직금 등은 우리 정부가 떠안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또 앞으로 발생할 부실의 대부분도 우리 정부가 떠안게 됐다.

결국 정부는 인수기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제일은행과 1월중 매각할 서울은행에 대해 모두 10조원에 가까운 추가출자(국민부담)를 추진하게 됐다.

금융당국은 우리측에 더 유리한 조건을 끌어낼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대기업 빅딜에서도 그렇고, 은행 매각에서도 그렇지만, 정부가 아직도 성급한 한건주의에 매달려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반병희(경제부)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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