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권선흥/제비뽑기로 군대가는 멕시코

  • 입력 1998년 12월 14일 19시 12분


멕시코 하면 챙 넓은 솜브레로 모자와 정열적인 마리아치스 악단, 그리고 선인장과 데킬라 등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멕시코에는 더 재미있는 문화가 있다. 국민 생활 구석구석 스며있는 ‘요행 시스템’이다.

필자가 처음 멕시코시티 근처 베니토 후아레스 공항에 내렸을 때다. 짐을 찾아 공항을 나서려는데 세관에 신호등같이 생긴 것이 있었다. 검색대의 버튼을 눌러 녹색등이 켜지면 검색 없이 통과되고 빨간색등이 켜지면 짐 전체를 열어 엄중검색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그날 운에 따라 전부 검색을 받든지 무사통과되는 시스템이다. 더 기상천외한 것은 멕시코의 징병제도다. 이곳의 한국무역관에는 멕시코인 남자직원이 세명 있는데 이중 한명은 병역을 필했고 두명은 병역을 면제받았다. 한명은 흰공을 집었고 두사람은 검은공을 집었기 때문이다.

즉 이 나라에서는 징집명령서를 받고 징병사무소에 가보면 검은색 주머니 한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다고 한다. 주머니안에는 흰공 4개 검은공 1개가 들어있다. 흰공을 뽑으면 군에 가야하고 검은공을 뽑으면 병역이 면제된다. 따라서 우리처럼 병역을 피하기 위해 자해를 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 멕시코의 요행 시스템은 불합리해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눈으로 볼 때는 오히려 우리의 시스템이 불합리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멕시코에서 오래 살 수록 그들의 요행 시스템에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권선흥(KOTRA멕시코무역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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