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47)

  • 입력 1998년 12월 11일 19시 12분


코멘트
화적 ③

뻬뜨루 최는 조국의 사장인 사진작가와 보름 전 브라질에서 처음 만났다. 첫눈에 서로 사기꾼임을 알아본 그들은 곧바로 ‘진짜 사나이’라는 명분 아래 의기투합해버린 모양이었다. 사진작가의 이름은 김태성이었는데 거성, 태성, 대성, 삼형제 중 둘째아들이었다.

뻬뜨루 최가 말했다.

―김태성 사장만 그런 줄 알았더니 회사분들이 다 훤출하군요.

승주라면 그런 말을 들어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었다. 조국은 늘 자신의 인물이 반듯하다고 주장하지만 그거야 반듯한 게 아니고 네모반듯한 것일 테고, 나 역시 ‘미남은 머리가 나쁘다’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적어도 열 가지 이상 수집해놓았을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뻬뜨루 최는 말솜씨가 좋았다. 브라질의 아름다운 자연, 주로 의류업에 종사하는 교민사회의 현황, 이민 3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이루어진 브라질 쇼의 적절한 시의성, 자기의 재력과 애국심, 김태성 사장과의 짧지만 진한 우정 등을 지칠 줄 모르고 늘어놓았는데 한 시간 정도는 지루한 줄 모르고 들을 만했다.

브라질에서 파라과이로 넘어가면 국제적인 세금 자유지역이 있다, 거기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게 바로 한국 사람이다, 카지노도 기가 막히다― 조국은 이 대목에 가장 솔깃했다. 승주의 관심사는 상파울루의 값싸고 서비스 좋은 갖가지 인종의 창녀들, 그리고 삼바축제, 토플리스 해안 등이었다.

―제가 이번 주말에 브라질 들어갑니다. 어떻게, 안 바쁘시면 다음주라도 일단 사전조사를 하러 오시죠. 비행기표는 바로 보낼 테니까요.

―다음주에요?

―리오에 가서 코파카바나 해변도 구경하고 헬기 타고 이과수 폭포도 한 번 돌아보죠. 저도 덕분에 오랜만에 요트 좀 꺼내서 함께 산토스 해변에 나가 일광욕이나 해야겠군요. 브라질 친구 하나가 섬 하나를 갖고 있는데 거기 별장에 가면 베란다에서 낚시를 할 수 있어요. 시간이 많으면 배로 아마존 밀림을 한 번 돌아도 좋은데.

조국과 승주의 입에서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뻬뜨루 최는 부자답지 않은 소탈한 면도 보였다. 사실 자신은 장사꾼일 뿐 가방끈이 짧다고 했다. 이민 2세들이 그랬듯이 자신도 어릴때부터 재봉틀 앞에서만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학 출신인 우리를 존경한다는 부분에서는 고개까지 약간 숙였다.

또한 그는 스스로가 장사꾼임을 강조했다.

― 장사꾼이 돈을 낼 때는 다 장삿속이지 뭐겠습니까. 사실 브라질 쇼가 신문에 연재되고 텔레비전에 중계되면 국내에서 홍보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그 덕 좀 보려고 협찬하는 겁니다. 쇼가 끝날 때까지 화면에 계속 ‘협찬 뻬뜨루 최 컨설팅’이라는 글자를 나타나도록 해줄 수 있죠?

그의 말이 끝나자 승주가 커다란 동작으로 손과 고개를 동시에 내저었다.

―걱정 마십쇼. 언론하고 광고 쪽은 우리 김 이사가 꽉 잡고 있어요.

<글:은희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