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승재/『내일도 깨어날 수 있길…』

  • 입력 1998년 10월 29일 19시 04분


전문대 치위생과를 졸업한 김나영(金羅影·24·여)씨가 경기 가평군 꽃동네를 찾은 것은 3월. 아버지가 10년째 트럭운전사로 일하던 그 곳에서 환자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자전거가게를 하다 실패해 절망에 빠진 아버지와 온가족을 보살펴 준 꽃동네였다.

만성 천식을 앓는 어머니의 거친 숨소리를 듣고 자란 김씨에게 꽃동네의 병든 사람들, 장애인들은 낯설지 않았다.

“온 병원이 그르렁 거리는 환자들의 숨소리로 가득할 때 전 이런 생각을 해요. 평생 이런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이 나의 운명이 아닐까.”

그러나 그런 김씨마저 한달 후에 그들과 같은 운명을 걷게 됐다. 목부위가 풍선처럼 부어 올라 입을 벌리기조차 힘들었다. 악성 림프종(임파선 암)이었다.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반년째 치료중인 김씨는 항암제로 인한 조혈(造血)세포의 파괴를 막기 위해 온몸의 조혈 모세포를 주사기로 빼낸 뒤 다시 주입하는 고통스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2주전 김씨는 무균실로 옮겨졌다. 더 강한 항암제 투입으로 백혈구 수가 줄어 저항력을 잃었기 때문. 치료비 2천여만원도, 이젠 하나도 없는 머리카락도 고민이었지만 더 무서운 것은 밤이다. ‘이렇게 잠들었다가 내일 깨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아침이 되어 햇살이 들어오면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쉰 뒤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보조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는 어머니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천식기 섞인 엄마 숨소리, 제게 얼마나 큰 기쁨으로 다가오는지 모르실거예요. 그건 바로 제가 살아 있음을 일깨워주기 때문이에요” 0356―890―100,5

〈이승재기자〉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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